모르긴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건강문제에 열성적인 국민도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전국의 이름난 산들은 연중 등산객들로 북적거린다. 대도시 인근 산들에도 종일 사람들이 오르내린다. 주말이면 장날처럼 붐빈다. 이웃 마실가듯 어둑한 새벽산을 찾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나라는 흔치 않을 것이다. 방방곡곡의 학교 운동장과 공원'강변도로 등지엔 주야로 걷고 뛰는 사람들이 이어진다.
언론매체에서 "○○가 건강에 좋다"고 입만 달싹거려도 전국적으로 동이 나버린다. 반면 "××는 몸에 해롭다" 하면 그 즉시로 수요가 뚝 끊어진다.
이른바 '웰 빙(well-being)'이 우리네 일상에서 으뜸 가치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여유롭게 아름답게 잘 사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가 됐다. 지난 6월 세계적인 무용가 피나 바우쉬의 한국 소재 신작 '러프 컷'에선 '빨리 빨리 조급증'에 빠진 한국 사회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우리를 계면쩍게 만들기도 했다. '웰 빙'에 대한 우리네 열정 역시 급한 성정만큼이나 맹렬하다.
우리는 무엇때문에 이토록 '웰 빙'적 삶을 추구하는가. 눈 가리개를 한 채 앞만 보고 달리는 말처럼 무작정 달려가는 걸까. 명저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의 저자 에리히 프롬식으로 생각해 본다면 웰 빙은 '소유지향적 웰 빙'과 '존재지향적 웰 빙'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짐으로써 행복해지려는 방식과 정신적 행복에 더 가치를 두는 방식. 두 가지를 다 얻으면 완벽한 삶이 되겠지만 불행히도 동시에 두 갈래 길을 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한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웰 빙'은 '웰 에이징(well-aging)'을 거쳐 '웰 다잉(well-dying)'으로 마무리돼야 진정한 '웰 빙'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호에서 '우아하게 늙어가는(aging gracefully)' 미국인 10명을 선정했다. 영화배우 폴 뉴먼(80)과 로버트 레드포드(68), 콜린 파월(68) 전 미 국무장관, 손맵시 좋은 평범한 주부에서 일약 '살림의 여왕'으로 등극한 마사 스튜어트(6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토니 모리슨(74),영화배우 로런 바콜(81) 등 남녀 10명이다. 그런데 그 비결이란게 특별난 것도 없다. 금연,식이요법, 적당한 운동, 10~20분의 낮잠, 건강한 성생활,편안한 마음가짐'''. 다만 한가지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노화(老化)에 맞서지 말고 자연스럽게 수용하라"는 것. "난 이제 늙어서'''"식의 탄로가(歎老歌)를 부르지 않는 게 최고의 비법이라는 것이다.
지구촌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200년 전보다 거의 배 정도 늘어났다. 눈부신 생명공학 발달로 멀지않은 장래에 평균 수명 100세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한다. 젊은 날보다 나이들어 살아가는 시간이 훨씬 더 긴 시대가 온다는 말이다. 평균 수명 78세인 우리나라는 고령화 진행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전국 시군구의 15%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대로라면 2050년엔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세계 최고가 될 전망이다.
이제 고령사회 문제는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곱게, 건강하게 나이들어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화두가 됐다. 인생에 예행연습이 있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인생은 냉정하다. 무릇 마라톤 주자는 터닝 포인트를 정확하게 돌아 목표지점까지 쉬임없이 달려야 한다. 우리 누구나에게 닥쳐올 '늙음'이라는 터닝 포인트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삶엔 예행연습이 없지만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를 위한 준비는 할 수 있다. 진정한 '잘 살기'는 '잘 나이들어가는 것', 그리고 '잘 죽는 것'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 "열정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을 새겨봄 직하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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