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2차전 연장 12회말. 김종훈의 끝내기 안타로 3루주자 김재걸이 홈에 들어오자 삼성 선수들은 솟구치는 기쁨으로 한 순간에 튀어나가 김재걸쪽으로 달려갔다. 결승점의 발판이 된 2루타를 치고 홈으로 들어온 김재걸이 자기한테 달려오는 팀 동료들쪽으로 돌아서는 순간 그의 뒷모습 너머로 주장 진갑용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크게 벌린 채 하이 파이브를 하려고 달려들었다.
이 순간을 잡은 사진(매일신문 10월17일자)은 승리의 환희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보통의 기쁨으로는 나올 수 없는 진갑용의 표정은 경악한 것 같기도 한데 극적인 승리, 그 자체를 나타낸다. 삼성의 우승을 지켜본 야구 팬들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이 경기를 전설처럼 추억할 것이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대회에서 최고의 스타는 우승팀 이탈리아의 스트라이커 파올로 로시였지만 최고의 순간은 마르코 타르델리가 빚어냈다.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로시의 선취골로 1대0으로 앞서가던 이탈리아는 후반 미드필더 타르델리의 중거리 슛으로 두번째 골을 넣었다. 타르델리는 골을 넣은 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팔을 벌리며 그라운드를 질주했다. 그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채 고개를 흔들며 울부짖듯 포효하는 얼굴로 벤치를 향해 달려갔다.
'어바웃 어 보이'와 '피버 피치'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닉 혼비는 영국의 축구 명문 아스날에 미친 팬이다. 아스날의 홈 경기 대부분을 경기장에서 직접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는 사정에 의해 1988/89시즌 리그 최종전 아스날과 리버풀의 경기를 TV로 지켜보게 됐다. 아스날이 두 골차로 이겨야 리그 우승을 할 수 있는 경기에서 1대0으로 앞서던 아스날이 경기 종료 직전 한 골을 더 추가, 우승을 확정짓자 그는 기쁨으로 날뛰다가 축구 선수가 그라운드에 눕듯이 거실 바닥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그러자 함께 TV를 보던 그의 친구들이 골을 터뜨린 선수 위로 동료 선수들이 덮치듯이 그의 몸 위를 덮쳤다.
극적인 경기를 '각본없는 드라마'라고 표현하는 것은 진부하고 뭔가 부족하다. 경기의 흥분과 감동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승리의 주역이 펼치는 세리머니도 팬들의 가슴을 울리는 데에서 차이가 난다. 이영표의 팀 동료 로비 킨의 '기관총 사격 세리머니'처럼 일정한 형식을 지니는 것 보다는 히딩크 감독의 '어퍼컷 세리머니'같이 몸 전체에서 격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예기치 못한 세리머니가 더 팬들을 열광시킨다.
승리의 흥분과 감동은 선수의 몫이자 함께 지켜 본 팬들의 몫이기도 하다. 팬들은 시즌이 이어지는 동안 시시한 경기에 실망하고 아쉬운 패배에 분노하다가 짜릿한 승리를 맛보는 순간 선수들과 일체감을 이루며 몸을 떨게 된다. 그리고 최고의 순간은 선수와 팬들에게 드물게 찾아온다.
김지석기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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