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이프다고 투정 좀 부려보렴"
현풍초교 5학년 박성주(11).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뒹굴던 내 아들이다.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업 시간 발표를 할 때면 주저없이 나서던 씩씩한 아이.
항상 밝고 쾌활해 친구도 많았다. 그런 아이가 지금 병원 무균실에 누워있다. 보기에도 안쓰러운 창백한 모습이다.성주 침대 앞 명찰엔 '골수이형성증후군'이라고 씌어있다. 급성백혈병으로 진행되기 전 단계의 질환. 쉽게 낫지 않는 병이란다.
지난해 가을 감기가 걸려 잘 낫지 않아 동네 의원에서 피검사를 했는데 의사는 좀 더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성주의 진단결과를 들었을 땐 믿기지 않았다. TV에서나 보던 장면이 내 아들에게 닥친 것이다.
성주의 머리카락은 수차례 항암치료와 약물치료로 사라져버렸다. 한참 외모에 민감할 나이인데 까까머리가 된 성주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가슴이 타들어간다. 외환위기 이후 대형화물트럭 지입차주이던 남편은 직장을 잃었다. 그리고 우리는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밝고 착하게 자라는 두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집을 경산 하양에서 내 고향인 현풍으로 옮겼다. 남편은 중장비 운전을 하며 열심히 일했고 나 역시 아이들을 친정집에 맡겨놓고 일을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3년 전엔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통닭집을 열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였다. 빚도 갚고 두 칸짜리 월세방을 벗어나 내 집을 장만하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성주의 병명을 받아드는 순간 우리는 꿈을 접어야했다. 다시 캄캄한 어둠에 빠져들었다. 글자 그대로 암흑이었다. 내 하루 일과는 온통 성주에게 맞춰져 있다. 하루 종일 성주 곁에 붙어 있다가 집을 찾을 때는 새벽녘. 병원 앞에서 첫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막내 은희(7·여)의 등굣길을 챙겨주곤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과. 이제는 이마저도 못하게 됐다. 여러 명이 함께 병실을 쓸 때는 다른 환자 가족에게 잠시 성주를 맡겼지만 각방을 쓰는 무균실로 옮긴 뒤엔 자리를 뜨기 어렵다.
별수 없이 은희는 외할아버지와 함께 지내야 한다. 한참 부모에게 응석을 부릴 나이인데 엄마 얼굴조차 자주 보여주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부모의 빈 자리는 내 아버지가 메워야 하는 처지가 됐다. 늙으신 아버지에게 외손녀 뒷바라지까지 맡겨 죄송하다. 엊그제도 은희는 외할아버지의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에 갔단다.
다음달 1일 성주는 골수이식 수술을 받는다. 수술비와 치료비를 합해 7천여 만 원이나 든단다. 여기저기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 걸 보면 내 낯도 어지간히 두꺼워진 모양이다.
하지만 성주가 받는 고통에 비하면 내가 겪는 부끄러움은 아무 것도 아니다. 젊은 사람의 혈소판이 필요해 병원 인근인 대구 남부경찰서를 찾아가기도 했다. 이미 아이들 여러 명이 도움을 받았다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이곳에선 한번에 10여 명씩 기꺼이 성분헌혈(혈소판 헌혈)에 동참해줬다. 무엇으로 이분들의 정성에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성주는 좀처럼 아픈 내색을 하지 않는다. 원래 말수가 적은 아이라 그렇겠지만 차라리 아프면 아프다고 투정이라도 부렸으면 좋겠다. 집안 막내인 애 아빠는 아프면 엄살도 부리는데 성주는 어른처럼 꾹 참고 있으니 지켜보는 내가 미안해진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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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백혈병 진단을 받고 병상에 누운 초교 5년생 아들을 둔 장미애(38·여·대구 현풍면 부리) 씨는 울지 않았다. 단칸방 신세인 장씨 가정으로서는 도저히 감당 안되는 수천만 원의 치료비. 하지만 그녀는 성주를 꼭 병상에서 일으키겠다고 했다. 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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