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우주만큼 넓은 공간, 도서관

입력 2005-10-25 11:58:49

2005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이 끝났다. 세계 책의 축제라고 할 수 있는 도서전에 우리나라가 주빈국으로 참가하여 프랑크푸르트 박람회장과 시내 곳곳에서 책, 문학학술, 공연, 전시 등의 다양한 행사를 펼치며 '문화국가' 한국의 이미지를 심었다고 한다. 지식정보 문명시대라는 21세기, 그동안 책의 중요성에 대한 작은 외침이 이제는 제법 큰 소리로 들리기 시작한다.

서울문화재단에서도 재단이 설립된 2004년부터 서울시 공공도서관과 함께 '책 읽는 서울' 캠페인을 시작했고, 서울시민은 물론 각계각층에서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2005년에도 '책 읽는 서울'은 지속되고 있고, 이미 책읽기운동을 시작한 원주시, 서산시, 순천시를 비롯 부산시, 고양시 등 지역별로 한 도서관 한 책읽기, 한 도시 한 책읽기 등 책과 관련된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책에 대한 캠페인이 갑자기 시작된 것도, 무언가 특별한 것도 아니지만 책 읽는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책사랑은 전 세계 어디서나 공통적이다. 다만 문화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과 조금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아마도 책이 있는 공간, 도서관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성과 사랑척도 정도일 것이다.

그래서 본고에서도 도서관에 관해서 잠깐 주목해주길 바라면서 도서관 예찬론을 펼치고자 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삶에서 책은 생활이면서 특별한 관계를 만든다. 그래서 나 역시 도서관에 대하여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도서관(圖書館)은 글자 그대로 책의 집이다. 도서관, 하면 떠오르는 보르헤스(아르헨티나의 전위시인'소설가). 눈먼 그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도서관장으로 있을 때, 도서관은 우주만큼 넓은 공간이라고 했다.

그렇다. 도서관은 그저 책을 보관하고 보여주는 장소만이 아니다. 책 속에는 얼마나 많은 지식과 정보와 삶의 지혜가 들어있던가. 그 모든 것들을 전부, 무형에서 유형의 모습으로 풀어놓는다면 이 세상은 온통 그 유형의 무언가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특히 오늘날 도서관은 책만의 집이 아니다. 대학의 도서관학과는 문헌정보와 같은 정보관련 이름으로 바뀐지 오래다. 정보의 수집과 공개, 그리고 활용은 이제 너무 당연하다. 뿐만인가? 만남의 장소, 교육의 장소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도서관은 책의 저장고가 아닌 진정 사유의 진원지이다. 그래서 도서관은 우주만큼 넓다.

한마디 더, 책의 중요성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문학에서부터 첨단 과학의 지식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의 기초도 책에서부터 시작이다. 특히 현장예술에 몸담고 있는 이들도, 사라지는 예술이라고 하는 공연예술조차도 창작의 시작은 책에서부터이다. 지적 호기심에서, 공연을 올리기 위해서, 가르치기 위해서, 심지어 짧은 대사 한마디에도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책과 씨름했던 나날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무언가를 이룰 수 있었다. 그래서 수많은 예술가들의 손에는 늘 책이 있다.

이제는 집을 나오면 발길 따라 가는 그 곳에 도서관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볼 만한 도서관이 우리 사는 곳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책은 사람이 써서 만들고, 사람이 읽는 것이므로 도서관은 책과 사람의 공동주택이다. 도서관의 베란다에서 이웃과 마주앉아 차를 마시며, 책을 보며,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세계도서전이나 지역별로 벌이는 책 읽는 캠페인이 단순한 행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 이제 도서관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지금 도서관의 환경이 많이 변하고 있다. 미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열악한 도서관이 있더라도 우리가 많이 이용해 주어야 선진 도서관으로 빨리 발전하지 않겠는가.

도서관이 말한다. 이곳에서 놀다 가라고. 노는 일은 쉬는 일이고, 쉬는 것은 다시 깨어나는 것이다. 하여 우리는 도서관에 간다.

유인촌(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