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아이가 중학교 2학년 들어 학교 성적이 갑자기 떨어졌습니다. 중학교 1학년까지는 내내 상위권을 유지했는데 갑자기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여름방학 동안 공부를 더 열심히 시켰는데 2학기가 돼도 성적이 잘 올라가지 않자 자신감도 잃은 눈치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답 : 이런 케이스는 중·고생들 사이에 의외로 많이 발견됩니다. 중학교까지 잘 하던 학생이 고교에 진학해 갑자기 떨어지는 경우는 아주 흔합니다. 그 원인으로는 달라진 환경에 대한 적응 실패, 친구 관계의 문제, 특정 과목에 대한 선호 변화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심리적인 문제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좋은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감, 공부에 대한 동기 결여, 학습의 자율성 부족 등입니다. 이런 심리적 요소는 형성 초기에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일정 기간 쌓이면 한 순간에 폭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적이 급격히 떨어져 회복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 현상입니다.
성장 단계별로 보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부모의 관심과 칭찬, 주위의 격려나 선물 등이 큰 동기가 됩니다. 하지만 커갈수록 공부를 해야 하는 나름의 이유가 필요합니다. 정서적인 요인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가정에서는 이런 부분을 소홀히 한 채 공부하는 기술적 능력을 키우는 데만 관심을 보이는 게 보통입니다. 과외다 학원이다 해서 정성을 쏟고 칭찬과 기대가 계속되니 아이들 입장에선 별 이유도 없이 관성적으로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동안 나오던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는 걱정도 조금씩 쌓입니다.
이럴 때 실수나 예기치 못한 이유로 기대했던 점수를 받지 못하면 아이들은 의외로 쉽게 자신감을 잃어버립니다. 게다가 성장기 아이들은 매사를 양 극단에 두고 판단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들지 못하면 영 안 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가령 학급에서 4, 5등 하는 학생에게 공부는 어느 정도냐고 물으면 "못 해요"라고 이야기하는 걸 자주 봅니다. 자신이 생각해서 1, 2, 3등이 잘 하는 것이고 그 이하는 등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성적도 한 번 떨어지면 바닥까지 가고 말 것이라는 걱정에 휩싸입니다. 실제로는 바닥이 아닌데도 자신이 설정한 기준보다 떨어지면 바닥이라고 체념해 버리는 것입니다.
부모가 이를 조장하는 경우도 흔히 보입니다. 가령 "중학교 때 1, 2등 못 하면 고등학교 가서 더 떨어지고 결국은 좋은 대학에 못 간다"고 하는 부모들이 적잖습니다. 부모 입장에선 공부 의욕을 자극하는 좋은 얘기로 생각하지만, 아이들에겐 좌절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요즘 수행평가 하나만 잘 못 해도 큰일났다며 호들갑을 떠는 아이들이 많은데 마찬가지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어른과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누구나 슬럼프에 빠질 수 있습니다. 공부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 시기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슬럼프를 큰 잘못이라거나 돌이킬 수 없는 추락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지 못 하는 것입니다.
이는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 이른바 자율성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스스로 무언가를 판단하고 실행하는 습관을 들이지 못한 데서 비롯된 일입니다. 따라서 공부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데 매달리기보다는 공부를 왜 해야 하고, 힘들어도 혼자 해야 하며, 부모는 지켜보며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일이 훨씬 중요합니다. 어려울 때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며 신뢰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매일같이 공부를 강요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너는 왜 스스로 알아서 공부할 줄 모르느냐"고 다그치거나 슬럼프를 혼자 극복하라고 요구하는 부모가 돼서는 곤란합니다.
박용진(진스마음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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