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져나올 수 없는 늪 조직적 '부정대출'

입력 2005-10-21 11:10:24

대구지검 특수부(부장검사 정상환)가 20일 적발한 금융브로커, 은행 직원, 감정평가사, 부동산 중개인 등이 결탁한 1천억 원대의 금융비리사건은 금융브로커들의 실체를 드러내고 감정평가 제도의 문제점, 금융권의 안이한 금융사고 대처방식 등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금융브로커 실체

브로커들이 활개친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실체가 드러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출자를 신용불량자로 하고, 명의대여자를 별도로 구하는 방법으로 본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 이번에 대구지검은 감정평가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범행에 가담한 브로커들의 조직도를 입수해 처음으로 13명을 검거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지점장을 포섭, 자신의 전담 지점에서 활동하다가 전담 브로커들 간에 구축된 연락망을 통해 다른 지점 브로커와 연계해 대출 알선을 하는 등 전국을 무대로 활동했다.

△감정평가제도 허점

감정평가사들은 감정가액의 1%를 받고 시세보다 많게는 최고 3~4배까지 높게 감정가를 산정했다. 경기도 여주에 있는 임야의 경우 시세가 12억 원이지만 34억 원으로 감정을 해줬고 이를 근거로 브로커는 20억 원을 대출받았다.

이런 엉터리 감정이 가능한 것은 은행 지점 직원들이 브로커와 짜고 감정평가사를 미리 내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정상환 특수부장은 "감정평가업자 선정을 지점에 맡길 것이 아니라 지역별 주거래 감정평가업자 풀을 구성한 후 지점이 신청하면 본점이 추첨에 의해 감정평가업자를 선정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부정대출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은행이 부실감정에 대비해 감정평가업자로부터 받는 보증금 1억 원도 상향 조정하고 허위 감정 평가 전력이 있는 감정평가사들에 대한 정보를 은행끼리 공유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는 지적.

△금융권 문제의식 부재

모 은행 인천 구월동 지점 경우 대출 담당 차장과 브로커들이 하나의 팀을 이뤄 6개월 동안 8건 95억 원의 부정대출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금융 비리는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국민 혈세 낭비가 뒤따르게 된다.

하지만 은행들은 부정대출에 따른 피해가 발생해도 신용도 하락을 이유로 쉬쉬하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사안이 불거지면 그때마다 임시방편식 대책만 마련하거나 덮어두는 바람에 일부 직원들이 금융비리 유혹에 쉽게 빠져들고 있다. 은행 지점에도 외부인이 참여하는 대출심사위원회를 만들어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부정대출의 늪

ㄴ은행 차장 허모(49) 씨는 브로커에게 10여 차례 부정대출을 해주고 4억1천만 원을 사례비로 받았다가 이게 약점이 돼 연체 대출이자 대납에만 5억 원을 갖다 부었다. 또 자신이 보증을 서기도 해 재산을 모두 날릴 지경에 처했다.

브로커들은 일단 금품으로 은행 내부자를 포섭한 뒤 부정대출을 받고, 추가 대출을 요구했다가 성사되지 않으면 협박을 했다. 시가 3천만 원 상당의 금괴와 다이아몬드를 사례로 받은 ㅇ은행 지점장 이모(55) 씨도 브로커의 수족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최정암기자 jeong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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