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소리를 없애고 그림만 본다고 생각해 보세요. 재미는커녕 끝까지 볼 수나 있을까요. 저의 음악은 애니메이션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죠."
음악에 정해진 답이 있을까. 그랬다면 우리가 듣고 있는 수많은 명곡들이 탄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받아들였고 그들에게 늘 '기회'를 부여해온 것이 아닐까.
이에스더. 그녀를 소개하는 데는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계명대학 음악·공연대학 뮤직프로덕션과 학과장이면서 뮤전 음악가. 그녀는 스스로를 '사운드 디자이너'이면서 '사운드 아티스트'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부족한 듯 '하이브리드' 음악인이라는 별칭을 덧붙여 달란다. 좋게 말하면 '통합'이란 의미를 담고 있지만 낮춰 표현하자면 '잡종'이란다. 그만큼 그녀가 하고 있는 음악은 좀 복잡하면서 생소한 분야다.
그녀의 음악 활동을 좀더 쉽게 풀어 쓰면 그림을 이어 붙인 동영상에다 성우들의 목소리를 넣고, 테마음악, 배경음악 등 모든 음악적 요소를 디자인하고 창작해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완성하는 일.
"새로운 소리를 찾기 위해 여행을 자주 다녀요." 그녀는 생각도 못한 소리를 발견하게 되면 즉시 녹음과 메모를 해 다음번 작업에 활용한다. 귀를 거슬리게 하는 소음조차도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좋은 소재가 된다.
새로운 음악세계에 도전하고 있는 그녀지만 사실 오랫동안 전통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5세 때부터 피아노를 쳐 대학 학부 때까지 피아노를 전공했던 터다.
"연주인으로 평생 피아노만 쳐야 하나라는 생각을 잠시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접한 컴퓨터 음악이 불모지와 같았던 지금의 길로 이끈 동기가 됐던 것 같아요."
연주를 하지 않아도 음악을 창작할 수 있고, 또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는 느낌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계명대 피아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지난 93년, 그녀는 미국으로 날아갔다. 뉴욕대에서 '뮤직 테크놀로지'를 전공(석사)하고 줄리어드대에서 다시 1년간 컴퓨터 뮤직을 공부했다. 내친김에 켄트주립대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얼마 전부터는 '음향'에 대한 연구에 또 한번의 도전을 하고 있다. 음향과 예술의 공존 가능성을 찾는 것이 연구의 핵심. 그동안 음향이라는 것이 음악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에도 물리나 건축에서만 다뤄져 안타까웠다.
"음악가는 관중을 위해 연주를 합니다. 그러나 최근의 연주 환경은 공간과 기기의 도움 없이는 더 좋은 음악을 선사할 수 없게 만듭니다."
유명한 성악가가 공간과 음향시설이 잘 된 공연장이 아닌 운동장 한가운데서 노래를 불렀을 때 과연 관객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 줄 수 있을 것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서로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음악가와 음향을 만드는 사람들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이들이 서로 이해하는 마음을 가질 때 음악을 돋보이게 하는 공연 시설을 만들고, 그런 공연장을 찾는 음악가들이 늘어 공연은 한층 더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것. 음악은 그것을 듣는 사람들에게 '편안'과 '위로'라는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라 정의하는 그녀는 지금 하고 있는 작업들 역시 듣는 사람들에게 감정적 풍요로움을 주는 일이라고 했다.
글·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