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옥입니다-가을하늘

입력 2005-10-19 11:31:33

한 지인이 말했다. "요즘은 운전을 하다가도 자주 하늘을 쳐다보게 돼요. 하늘빛이 얼마나 고운지'''."

평소엔 머리 위에 하늘이 있는지 없는지 관심도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맘때면 절로 하늘을 자주 쳐다보게 된다. 잿빛 스모그가 층층을 이루는 도시의 하늘조차 이 계절엔 완연히 달라보여서다. 두 눈 가득 들어오는 그것은 물기 머금은 청잣빛이다. 그야말로 푸른 물감을 뿌려놓은 것만 같고,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면 파란 물이 뚝 뚝 듣을 것만 같다. 매연에 가려져 눈에서 멀어지고 마음에서도 잊혔던 산들이 성큼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이 계절에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아침에 짙은 안개가 낀 날일수록 한낮은 가슴 설레게 눈부시다. 농무(濃霧)가 모든 것을 뒤덮어 사방이 뿌옇게 흐려져도 걱정하지 않음은 때가 되면 제아무리 짙은 안개도 걷히고 만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현실이 암울하고 앞날이 불안해도 결코 절망치 말라고 가을하늘이 가르쳐 준다.

아무튼, 온 사위에 빛살가루 뿌려지는 가을날이면 불현듯 듣고 싶어지는 노래가 있다. 그럴 때 텔레파시가 통한 듯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송창식의 노래, "눈이 부시게 푸른 날은~" . 작은 것, 사소한 것에도 만족하고 기뻐할 줄 아는 '소욕지족(少欲知足)'의 행복감을 한바구니 안겨준다. 살아 있어 가을하늘을 볼 수 있음에, 그 아름다움에 취할 수 있는 두 눈 있음에, 그 하늘빛에 살랑 떨리는 가슴 있음에 새삼 감사하게 된다.

우리는 세상파도에 휩쓸리고 닳아져 자꾸만 속물이 되어가는데 해마다 가을하늘은 만년 소년처럼 해맑기만 하다. 하늘거울에 우리를 비춰보게 한다. 구름 모양도 다른 계절과 확연히 다르다. 여름하늘의 구름은 뭉게구름처럼 수직형이지만 가을하늘은 새털구름이나 양떼구름마냥 수평적이다. 경쟁적이지 않고 평화롭다.

텅 비어서 더없이 '공활(空豁)'한 가을하늘. 'Less is More', 단순할수록 아름다운 것임을 말없이 보여준다. 고요하고 담담한 허무무위(虛無無爲)의 경지라 할까. 우리 속인들이 흉내조차 내기 힘든 '텅 빈 충만'의 경지이리라. 저마다 "내가 내로라", 어깨를 세워 기고만장 떠드는 이 세태에 가없이 높고 넓고 푸른 가을하늘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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