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정원의 역사

입력 2005-10-15 09:19:30

정원의 역사/자크 브누아 메샹 지음, 이봉재 옮김/르네상스 펴냄

현대인들은 단독주택의 작은 앞마당이든, 아파트의 베란다든 아무리 조그만 틈이 있어도 자신만의 정원을 만들어놓고 즐기곤 한다. 좁은 공간에 인위적인 자연을 만들어두는 것은 자연을 결코 가까이 할 수 없는 현대인의 콤플렉스가 아닐까.

정원을 사랑했던 자크 브누아 메샹(1901~1983)이 자신의 체험과 추억을 바탕으로 정원 예술의 의미와 가치를 설명한 '정원의 역사(르네상스 펴냄)'는 세계 정원의 이모저모를 살피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와 민족이 정원을 가졌을테지만 저자는 특히 중국, 일본, 페르시아, 아랍제국, 토스카나, 프랑스의 정원에 주목하고 있다. 정원의 특색이 뚜렷한데다 나름대로 발달한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정원은 대칭형이 없다. 대부분의 중국 정원은 한눈으로 전체를 조망할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대신 색다른 경치가 차례차례 나타나 방문하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형태로 설계되었다.

자연의 일부까지 정원으로 받아들여, 산이나 하천의 지류, 바다의 일부까지도 받아들였는가 하면 한편으로 남몰래 조심스럽게 운영되는 정원도 있었다. 정원의 주인은 정원사를 많이 채용하여 정원이 단조롭지 않으면서 시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부단한 변화를 꾀했다. 심지어 황제나 높은 관료들은 상춘(常春)의 한복판에 와 있는 것 같이 느끼기 위해 가을바람이 나부끼는 낙엽 대신 부드러운 초록의 비단 잎을 가지에 매다는 일꾼을 따로 둘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의외로 정원의 크기에 대해서는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중국인은 크기에 따라 아름다움을 가늠하지 않았기 때문에 면적이 몇 십만평에 이르는 정원이 있었는가 하면 아주 작은 정원도 존재했다. 물 쟁반이나 화분에 넣기도 하고 손바닥에 올려놓아도 될만한 아주 작은 정원을 만들기도 했던 것이다.

일본은 중국의 정원 방식을 받아들여, 자신만의 독특한 정원문화로 바꿔나갔다. 6세기경 한국·중국과 왕래를 시작하면서 중국 정원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본뜨기 시작한 일본은 정원예술에도 엄격한 규제를 두었다.

떠오르는 영감은 인정하되 무질서와 즉흥적으로 정원을 꾸미는 것은 허용되지 않은 것. 예를 들면 정원의 중앙에 못이 있고 그곳으로 물이 흘러들어가고 흘러나오는 개울이 없으면 안된다는 식이다.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방편이었던 중국, 일본의 정원과 달리 페르시아의 정원에는 종교적인 의미가 담겨 있어, 국가적으로도 중요하게 다뤄졌다.

페르시아의 정원은 성벽에 에워싸인 높은 곳이거나 혹은 지구라트(ziggurat)라고 불리는 높은 탑의 꼭대기에 만들어졌다. '지상낙원'이라는 이름 그대로 페르시아의 정원은 '하늘과 땅을 맺어주는 인연'이었고 따라서 그것을 보호, 관리하는 것은 국가적인 사업이었다.

유럽에는 힘있는 개인들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이탈리아 메디치가의 로렌초는 인간 정신의 향상을 칭송하는 정원을 만들고자 했으며 16세기 중엽 이탈리아 비치노 오르시니공에 의해 천국의 이미지가 아니라 지옥을 떠올리게 하는 정원도 만들어져, 차례로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이는 르네상스 초기 사람들의 발명과 발견에 대한 환상이 차츰 무너지면서 나타났던 고민과 초조함, 공포심을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의 정원은 도피와 꿈의 정원이었고 아랍 정원은 오아시스 같은 쾌락의 정원이었으며 페르시아는 향수와 욕망의 정원이었다. 영국의 정원은 천국의 이미지를 재현하려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원을 통해 완성의 단계에 이른 문명은 중국, 일본, 페르시아, 아랍제국, 토스카나, 프랑스 정도 외에는 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경험적인 틀 속에 갇혀있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페르시아나 아랍 제국, 15~16세기 유럽 정원의 모습을 당시 사상의 흐름과 함께 소개하고 있어, 세계 정원 역사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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