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Travel라이프] 베트남 배낭여행

입력 2005-10-12 16:54:23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긴 나라. 알고 있는 것은 이것뿐. 무턱대고 베트남에 도착했다. 베트남의 경제도시 호찌민에 도착하자 마주 대한 것은 엄청난 양의 오토바이와 길이를 종잡을 수 없는 길게 뻗은 가로수들이었다. 무질서 속의 질서가 이런 걸까.

정글 속에 혼자 떨어진 병사처럼 우왕좌왕하다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숙소를 잡기도 이른 시간이라 지도를 보며 베트남 국립미술관을 찾았다. 만동의 입장료를 내고 아르누보식 창문과 바닥으로 장식되어 있는 작은 건물로 들어갔다. 아담한 건물에 비해 많은 양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미국과의 전쟁이 화가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일까? 서구적 느낌의 세련된 작품도 있었지만 참혹한 전쟁에 관한 조각과 회화 작품이 많았다.

지하에는 3개의 개인 갤러리가 있다. 작가의 작업실이 같이 있어 직접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외우기라도 하려는 기세로 뚫어지게 그림을 쳐다보니 큐레이터쯤 되는 여자가 폭소를 터트린다.

오후 4시. 슬슬 나와 숙소를 잡기 위해 데탐 거리로 발길을 돌렸다. 미니 호텔에 짐을 풀고 호찌민 시를 다시 둘러보기 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에 들러 지도를 구하고 구찌터널 투어와 시티투어를 신청했다. 구찌터널 투어는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영웅적인 마을을 관광자원화한 곳이다.

버스로 1시간 정도 걸린 구찌는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가이드를 따라 터널을 체험해 보았다. 잠깐이었지만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은 비오듯 흘러내렸다. 게다가 좁고 습한 어둠의 세계는 공포 그 자체였다. 호미와 삼태기로만 만들어진 250km의 지하세계. 아무리 최첨단 무기를 가진 막강한 미국이라고 하지만 피땀으로 이룬 터널을 어찌할 수는 없었나 보다.

다음 여정은 호찌민시 조각 공원. 기사와 흥정을 한 뒤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신호등 하나 없는데 사고없이 유유히 잘 간다. 인상적이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개성 강한 여러 개의 조각들과 크고 작은 나무들. 호찌민 시를 대표하는 공원답게 크고 깨끗하다. 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점이 있었다. 4층의 호화로운 건물은 다량의 책과 펜시 문구, 아이들을 위한 미술 체험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어디선가 낯익은 한국말소리가 들렸다. 미술체험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호찌민 한국인 학교에 다니는 깜찍한 두 명의 여학생이었다. 몇 년 전에 가족과 함께 이민을 왔단다. 금방 친해진 우리는 스티커 사진도 찍고 시내 쇼핑도 했다.

두 명의 여학생 중 한 명인 민지(15)가 데리고 간 시내 작은 쌀국수 집은 이제껏 먹어본 쌀국수 중에 최고의 맛이었다. 지금도 그 맛이 그립다. "다음 달부터 시클로가 없어져요"라는 민지의 말에 돌아오는 길은 시클로를 탔다.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의 마지막 하루. 멜콩델타 하루 투어를 신청했다. 베트남의 풍요로운 농촌과 소박한 생활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 분명히 비행기 시간 4시간 전에 돌아와야 하는데 배 고장과 비로 인해 2시간을 지체해 버렸다. 아슬아슬하게 숙소에 도착한 나는 허둥지둥 짐을 챙겼다. 그 모습을 본 숙소 주인이 다가와 "Don't worry"라고 외치며 다독거려준다. 그리고는 콜택시를 불러주며 기사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공항까지 가는 요금을 지불해줬다. 마지막까지 신경써주는 주인이 너무 고마워 눈물을 흘렸다. 사회주의 공화국과 전쟁이라는 편견으로 시작한 베트남 여행. 이런 편견이 다 부질없음을 느끼게 해준 여행이었다.

안주희(경북대 미술학과 3학년)

후원 : GoNow여행사(로고 및 연락처)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