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몸 만지면 "싫다" 할래요

입력 2005-10-11 09:57:24

성교육 인형극 보던 4~7세 아이들, 나쁜 아저씨 잡혀가자 "와~ 신난다

"놀이터에서 잘 놀고 왔니? 그런데 웃지 않는 걸 보니 별로 재미가 없었나 보구나."

어서 씻고 맛있는 간식 먹으라는 엄마의 말에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잠시 주저하다가 놀이터에서 어떤 아저씨가 자신의 몸을 만진 일을 얘기하자 "용기 있게 소리를 잘 질렀구나. 엄마한테 말한 건 잘한 일이란다" 하고 다독거린 뒤 경찰에 신고하는 엄마….

얼마 전 대구시 북구 구암동 '선우어린이집'에서는 재미있는 인형극이 열렸다. 바로 옆 '꼬마선우놀이방' 유아들을 포함해 인형극을 보던 4∼7세 어린이 60명은 나쁜 아저씨가 경찰에 혼나는 모습을 보며 신나게 박수를 쳤다.

"내 몸은 소중해요, 안돼요라고 말할 수 있어요?"

'말해요'라고 적힌 풍선을 든 선생님들의 물음에 "예" 하고 큰 소리로 대답하는 아이들. 김병현(7) 군은 "아주 재미있었어요. 내 몸은 소중해요"라며 인형극을 본 느낌을 또박또박 말했다.

이날 인형극 공연을 한 주인공은 '좋은 세상 인형극단'.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대구지부 대구여성폭력통합상담소 부설 극단으로 30, 40대 주부 등 여성 단원 6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부터 대구지역 민간보육시설인 어린이집을 찾아다니며 인형극을 선보인 이들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인형극을 통해 성폭력 예방 교육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효과를 확인하고 지난 4월 인형극단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친부·의부에 의해서도 성폭력을 당하는 상담사례가 적잖게 있습니다. 특히 7∼9세 때부터 성폭력인 줄도 모른 채 피해를 입어 학교 부적응, 자살 충동까지 보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대구지부 대구여성폭력통합상담소의 허향 씨는 "요즘 아이들의 성폭력 피해사례를 보면 주변 사람에 의한 경우가 78%를 차지하고 있다"며 "어릴 때부터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즐겁게 보고 교육 효과를 높일 수 있도록 인형극을 도입하게 됐다는 것.

임경미 '좋은 세상 인형극단' 단장은 "어른 말을 잘 들으면 착하다는 교육을 받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해도 아이들은 거부하지 못 하는 것 같다"며 "아이도 싫은 느낌이 들 때는 단호히 싫다고 말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남매를 키우며 중·고등학교에 성교육도 나가는 임 단장은 "부모들이 배꼽 위 눈·코·입 명칭은 정확히 가르치면서 배꼽 아래는 '잠지', '고추'라고 말하는데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며 "아이들이 궁금해 할 때 고환, 음경 등 명칭을 정확히 알려주고 몸의 사적 공간은 함부로 공유할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대구지부 유연희 소장은 "인형극을 본 어린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성교육을 하기 쉬워 어린이집의 공연 문의가 많다"며 "장애인 어린이집, 복지시설 등지에서도 공연해 좀더 많은 어린이들이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했다. 성폭력 전화 상담 053)745-4508.

김영수기자 stel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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