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만든 민규동 감독

입력 2005-10-10 08:16:22

단편영화들에 이어 장편 데뷔작 '여고괴담2'를 내놓으면서 그는 충무로 기대주로 떠올랐다. 독특한 스타일과 캐릭터의 내면을 파고드는 시선 등이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차기작을 내놓기까지는 무려 6년의 시간이 흘러야했다. 그런데 그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가 난산 끝에 내놓은 두번째 장편이 가을 극장가에 '사고'를 칠 기세이기 때문이다.

민규동(35) 감독이 멜로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제작 두사부필름)을 들고 극장을 노크했다. 7일 전국 350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각양각색의 일곱 커플을 내세워 그들의 일주일을 카메라에 담은 사랑에 관한 보고서다.

한국판 '러브 액츄얼리'(라고 설명하면 그는 싫어하지만)를 말끔하게 만들어낸 그는 "영화가 잘될 것 같다"는 인사에 "감독 인생이라는 것이 도박판의 룰렛 같은 것이라 동요하지 않으려고 한다. 실제로 지금 마음은 평온하다"며 싱긋 웃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차기작을 내놓는데 오래걸렸다.

▲'여고괴담2'를 끝내고 2년 정도 프랑스에 가서 살았다. 영화도 실컷 보고 해외영화제도 많이 돌아다녔다. 귀국해서 '솔롱고스'라는 작품을 야심차게 준비했지만 잘 안됐다. 그후 너무 나만이 좋아하는 영화를 고집하는가 싶어 (투자자들이 좋아할만한) 장르 영화를 몇편을 고민했다. 그러나 그 작품들 역시 '여고괴담2'의 꼬리표라고나 할까, 내가 굉장히 이상한 영화를 만들 것 같은 선입견 때문인지 영화화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시름시름 앓았다. 말 고삐를 잡고 칼을 들고 뛰쳐나갈 태세인데 말이 나무에 묶여 있는 꼴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몇년째 뛰니까 허리도 아프고해서 말에서 내려왔다.(웃음) 다시 1년 반이 흘렀다.

--'내 생애…'는 본인이 준비하던 작품이 아니다.

▲제작사에서 원안 시나리오를 주며 영화화 제의를 해왔다. 내가 시작한 작업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마치 한참 연애하다가 정작 결혼은 딴 여자랑 선보고 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렇게 결혼했어도 애정을 갖고 같이 살면서 물이 스며들듯이 내 사람이 되가는 느낌. 어쨌든 이 영화 역시 내가 만드는 이상 내 화두가 들어가지 않겠는가.

지나고 나니까 가슴이 넓어진 것도 같고, 내 안에 방이 여러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사실 내게는 이 영화가 '실험' 영화의 성격이 짙은데, 그런 실험이 굉장히 의미있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복잡한 구조다. 시나리오 각색에 얼마나 투자했나.

▲9개월 정도 혼자서 작업했다. (원안은 내것이 아니지만) 내가 요리사니까 요리를 직접 하려면 쇼핑부터 하고 레서피도 고쳐야했다. 캐스팅하면서도 계속 각색했다. 압축해나갔고 구체화했다. 동시에 어느 한 이야기라도 빠지면 네트워크가 무너지는 구조라서 전체를 신경써야했다. 또 특정 인물에 끌려가지 않도록 무게중심을 배분해야했다. 덕분에 순서편집에서 10분 정도만 들어냈다. 시나리오 작업 과정이 길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거의 그대로 찍었고 그대로 편집됐다. 촬영하면서 10신 정도를 없애기도 했다. 편집도 한 열흘 정도밖에 안 했다.

--한국판 '러브액츄얼리'라는 설명을 그렇게 싫어한다던데.

▲그런가.(웃음) 감독으로서 '오리지낼러티'라는 화두를 늘 갖고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자신 굉장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지 않나. 이 영화에는 스포츠, 액션, 신파, 멜로가 골고루 녹아있다. 각 이야기를 다양하게 해야한다는 절박함에 도전해보니까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성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오리지낼러티'를 갖고 있든 아니든.

--'여고괴담2'에서 보여준 스타일이 묻혔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전작이 세밀화였다면 이번에는 크로키 같은 것이다. 좀 다른 시도를 했다고 할 수 있다. 단편영화 때부터 쌓아온 영화적 화두나 스타일에서는 좀 점프된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 자신 그것을 정확히 알고 한 작업이다.

--캐스팅, 촬영 비화를 얘기해달라.

▲주현씨를 제일 먼저 캐스팅했고 임창정씨가 마지막 주자였다. 대부분 일찌감치 출연의사를 밝혔지만 막상 계약서를 쓰기까지는 시간이 참 오래걸렸다. 모두들 상대 배우와 다른 커플들의 캐스팅을 주시하더라.(웃음) 동성애자 역은 천호진씨를 놓고 썼는데, 연기하면서 너무 센 표현은 오히려 들어내야했다. 그랬더니 천호진씨가 섭섭해했다.(웃음) 연기변신을 시도한 김수로씨는 캐릭터 분석을 아예 리포트로 써오는 열성을 보였다. 오미희씨(극중 '오드리'로 불린다)의 경우는 캐스팅 전화를 했을 때 마침 백화점에서 오드리 햅번이 좋아했다는 빨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고 해 인연이다 싶었다.

--이제 뭐 할 건가. 또 프랑스 가나.

▲이젠 아이도 있고 빚도 갚아야 하고….(웃음) 그동안 준비해왔던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구체화해나갈 것이다. 세 가지 아이템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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