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졸음 裁判

입력 2005-10-08 11:36:52

법정에 에어컨이 없던 시절, 팬티 차림에 법복만 걸치고 재판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무더운 여름철 푹푹 찌는 법정에서 넥타이를 졸라매고 치렁치렁한 법복을 두르고 있으면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단다. 그렇다고 촐랑촐랑 부채질을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법복 안 아랫도리를 벗는 피서법이 은밀하게 돌았다. 얼음물 대야를 법대 뒤에 감추어 발까지 담그면 금상첨화. 피고인석'방청석에서는 알 리가 없었다. 그저 근엄한 판사의 입만 쳐다봤을 테니까.

◇ 검은 법복은 법관의 권위와 위엄의 상징이다. 법정에 나온 사람들은 법복만 보아도 일단 호흡을 가다듬는다. 판사들도 법복으로 갈아입는 순간 자세가 180도 달라진다고 한다. 신성한 법의 집행관으로 변신이다. 프랑스 극작가 보마르셰가 쓴 희극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재판관 브리드와종은 항상 법복을 입는 우스꽝스런 모습이다. "모두 법복 앞에서는 벌벌 떠니 법정밖에서도 벗을 수가 없소"가 이유다.

◇ 지금과 같은 법복은 1960년대에 모양을 갖추었다. 해방 후에 오동잎 무늬가 새겨진 일제 법복을 벗었지만 마땅한 유니폼이 없어 한복 두루마기나 잠바 차림이었다. 6'25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우리 손으로 무궁화 무늬를 새긴 법복과 법모를 만들었다. 그러다 1965년에 무궁화 무늬를 없애고 소매와 옷자락을 늘려 놓았다.

◇ 판사 10명 중 1명은 재판 도중 졸고, 2, 3명은 재판에 지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부터 2개월 동안 법률소비자연맹 활동가들이 방청인으로 서울고등법원과 중앙지법의 법정을 모니터 한 결과다. 국정감사에서 이를 밝힌 김성조 국회의원은 "재판 중 졸고 있는 판사는 지난해에 비해 줄어들었지만 고쳐야 할 점"이라며 "단독재판에서는 조는 판사가 없었으나 합의부 배석 판사가 졸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 실제 합의부 배석 경험이 있는 변호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재판 도중 졸음이 밀려오기 일쑤라고 한다. 배석 판사는 사실상 별 일도 없고 재판기록도 이미 알고 있는 판에 원고와 피고의 지리한 재탕 진술을 듣고 있노라면 눈꺼풀이 천근만근 내려앉는다는 얘기다. 운전 중 대책없이 쏟아지는 졸음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해함직한 판사들의 고충이다. 사정이 이렇다니 '주의! 졸음 재판' 경고문이 등장할지 모르겠다.

김성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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