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하다.
왜 이런 사건 때문에 밤을 새워야 하는지, 왜 이런 사건 때문에 가슴아파해야 하는지, 왜 이런 사건때문에 분노해야 하는지…. 참 허망한 일이다.
밤새워 관련 뉴스를 정리한 뒤 만난 한 지인(知人)이 한 말이다. 그는 내게 담당부서 부장으로서 이 납득하기 힘든 사건에 대해 설명을 해보라고 했다. 설명할 수가 없었다. 후진국형 사고가 분명한데 한국이 후진국인가하면 그렇지도 않다. 다른 이들도 한결같이 설명을 요구했지만 도저히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지금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지만 독자여러분들께도 나는 어떤 설명을 드릴 수 없다. 다만 허망함과 막막함을 전할 뿐이다.
이번 참사로 숨진 이들 가운데는 12세, 14세된 사촌형제와 엄마 따라 외가에 왔던 7세짜리 아이도 있다고 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찾아온 부모는 이미 식어버린 아이를 붙들고 '제발 눈 좀 떠봐라'며 울다 실신했다고 했다. 또 이번 축제기간 중 내내 쓰레기를 주우며 자원봉사를 했던 아주머니들도 있다고 했다. 이날도 땅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다가 밀려드는 사람들 틈에 휩쓸려 들어갔다고 했다.
TV에서만 보던 인기가수들을 직접 한번 보려던 우리의 촌 아지매와 아저씨들, 혹시나 늦을까 조바심을 내며 2, 3시간 전부터 맘 설레며 공연장으로 갔던, 그래서 좁은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 모두의 부모들과 아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을까? 손자 손잡고, 아이 손잡고, 동생 손잡고, 이웃 손잡고 웃으며 갔던 그 길에서, 그렇게 보고싶어하던 공연이 시작도 되기 전에, 숨이 막혀 스러진 그들은 도대체 무슨 잘못을 지었을까?
아니, 그들에게는 분명 잘못이 있었다.
1년 내내 그럴 듯한 공연하나 열리지 않는 문화소외지대에서 산 잘못이다. 그까짓 인기가수가 뭐라고 그렇게 애태워 기다린 잘못이다. 돈을 둘러싸고 온갖 추악함이 넘실거린 '죽음의 축제'에 초대받은 것이 그저 대견하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한 잘못이다. 어떤 잘못보다 제일 큰 것은 번드레한 형식을 좋아하고, 공무원과 업자가 야합하고, 수백 명이 죽고 다치는 사고가 벌어져도 '도의적 책임'만 있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이들이 판을 치는 이 땅에 태어난 잘못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 땅에 태어난 것이 또 그렇게 행운이리라.
이번 참사를 들여다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그릇됨이 한꺼번에 보인다. 시장은 인척이 대표로 돼 있는 무경험 기획업체에 모든 것을 맡겼다. 그 업체는 다시 급조된 이벤트 회사에 하청을 주고 무면허 경호회사에 경비를 맡겼다. 방송사는 자기네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도 '촌'에 행차하시는 대가로 1억3천만 원을 챙겨갔다. 누구보다 먼저 시민을 보호해야할 시와 경찰은 시민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가족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있을 때 공문서 쪼가리 하나를 놓고 '보냈느니 안 보냈느니, 구체적인 병력지원 숫자가 있었느니, 없었느니'하고 싸우며 서로 책임이 상대에게 있다고 했다. 모두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직접적인 책임은 없고 도의적인 책임'만 있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억지였지만 너무나 당당해서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사건은 진행형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미 완료형이다. 몇 사람이 바뀌고, 혹은 붙잡혀 들어가고, 약간의 형을 살거나 집행유예로, 무혐의로 풀려나거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고때마다 골백번도 더 만든 대책을 마련한다며 공연장 안전점검을 다시 하고, 무면허 업자를 단속하고, 비리 커넥션을 캐내고, 관 끼리의 협조체제를 재구축하고, 관리들의 무사안일을 성토하고…. 결과가 너무 잘 보여 스스로가 밉기까지 하지만 적지 않은 사건을 통해 만들어진 경험은 수학공식처럼 확고부동하다.
이제는 더 이상 먼저 간 그들을 위해 아파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 분노를 누구에게 퍼부어 내 아이들에게는 이러한 아픔을 겪는 일이 없도록 해야할까만 생각하고 싶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아무 것이 아니다'는 것을 믿고 있지만 가끔씩은 아무나 다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믿는 까닭이다.
정지화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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