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님께

입력 2005-10-06 11:22:41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님, 안녕하시지요? 여성차별적인 생각이라고 보실진 모르겠습니다만, 전 여성 정치인에겐 '프리미엄'을 줘야 한다고 봅니다. 남자들이 지배하는 정치판에서 일하기가 쉽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똑같은 실수를 하더라도 여성에게 더 가혹한 점이 있지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저는 박 대표님에게 일정 부분 강한 호감을 갖고 있답니다.

박 대표님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단호하게 거부하셨습니다. 저 역시 대연정 제안을 비판한 사람이기에 그 뜻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전 대연정을 제안하게 된 노 대통령의 문제의식에 대해선 뜨거운 지지를 보냅니다.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으셨지만, 박 대표님도 내심 그런 지지의 뜻을 조금이라도 갖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저의 그런 믿음은 박 대표님이 과거 그 어떤 한나라당 지도자보다 더 호남 민심을 끌어안기 위해 애를 쓰신 것에 대한 평가에서 비롯됩니다. 어떤 이들은 박 대표님의 그런 행보를 정략적인 걸로 보기도 했습니다만, 전 정략이라 하더라도 과거에 어떤 분이 그렇게까지 애를 쓰셨던가 하는 점에서 높게 평가합니다.

박 대표님께 한가지 요청을 드리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건 바로 '한나라당과 호남'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엔 호남은 한나라당을 무조건 거부한다는 강한 속설이 있습니다. 아니 그 속설은 그간 늘 선거 결과로 입증돼 왔기 때문에 거의 진리처럼 여겨지는 것이지요. 실제로 많은 호남인들마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속설이 다소 부풀려진 신화일 수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박 대표님께 요청하고자 하는 건 그 신화를 검증해주시라는 겁니다. 호남의 한나라당 당직자나 당원들을 대상으로 해서 증언을 청취해 백서를 내시면 어떨까요? 그 분들의 한(恨) 맺힌 사연이 많이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호남인들이 포용력이 큰 사람들이라는 걸 일단 믿어 주십시오. 누구보다 더 화해를 갈망하는 사람들이라는 것도요. 그간 호남인들이 한나라당을 거부했던 건 상당 부분은 한나라당의 선거 전략과, 또 상당 부분은 상호 오해에서 비롯된 악순환의 결과 탓이 크다는 게 저의 판단입니다.

그간 한나라당은 이른바 '선택과 집중'의 논리로 호남을 대해왔습니다. 아무리 애써봐야 호남에선 표가 나오질 않는다는 이유로 호남은 아예 포기하고 표가 나올 만한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선거 전략을 써왔다는 거지요. 일부 한나라당 인사들은 영남의 몰표를 얻어내기 위해 오히려 호남을 자극하는 일도 하곤 했습니다.

한나라당의 전국구 의원과 고위 당직을 한번 살펴봐 주십시오. 호남에 얼마나 많은 배려가 있었습니까? 거의 없었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가 아니겠습니까? 한나라당이 진정 호남까지 껴안는 전국정당이 되고자 했다면 그렇게까지 호남을 외면하진 않았을 겁니다. 선거 때만 해도 그렇습니다. 도무지 진정성이 없었습니다. 호남에 형식적인 유세를 왔다가도 무슨 핑계를 대고 유세를 취소하고 영남으로 달려가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런 세월이 길어지면서 악순환이 발생했지요. 한나라당 고위직에 호남인이 거의 없다 보니 호남을 배려하는 일에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 점은 생각해주지 않고 호남인들 탓만 합니다. 이 오해를 박 대표님께서 좀 풀어주시는 건 한나라당과 호남의 관계를 떠나 한국정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이제 영호남 모두 "당신들이 그러니까 우리도 그런다"는 식의 거울 효과를 폐기할 시점이 무르익었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진실성이지요. 박대표님의 트레이드마크가 자신의 언행에 대한 '책임감'과 '진실성'이라는 말을 믿고 싶습니다. 제가 일하는 전북대에 교환학생으로 오는 부산대, 경북대 학생들의 지극한 호남 사랑을 볼 때마다 선거 때만 되면 동서가 갈라지는 그 지긋지긋한 문화를 끝내는 데에 저도 일조해 보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곤 합니다. 박 대표님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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