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가 맞은 변화상 중 하나는 '은퇴 세대'의 본격적 등장이 아닐까 싶다. 은퇴 세대의 발생과 그 누적 현상을 주변에서 가장 생생하게 실감하는 곳이 바로 산이다. 높은 산 낮은 산 할 것 없이 요즘 산은 매일매일 아침 일찍부터 북적인다. 평일에도 오전 10시쯤이면 팔공산 그 높은 봉우리 어디 없이 사람 소리로 질펀하다. 휴일 인구는 도심보다 근교 산에 더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 시민들에게 산의 존재 방식이 바뀐 것이다. 특히 근교 산은 이제 '모든 시민의 정원', 즉 '공원'으로 변했다. 은퇴 세대들은 거기서 성취감과 '런너스 하이'를 얻으며, 아주머니들은 등산으로 '웰빙'을 삼는다.
그렇다면, 이제 산을 보는 지방 정부들의 시각도 환골탈태해야 할 터이다. 산을 시민들의 제대로 된 휴식처로 가꿔야 하고, 특히 '자연 공원'으로 지정한 산이라면 그야말로 공원답게 다듬어 공급해야 하는 시대를 맞은 것이다. 그러려면 봉우리와 재, 그리고 골에 이름표를 붙여 전래 명칭을 전승시키고, 거기 얽힌 지역사 설명판도 세워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시민들로 하여금 향토를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길이며, 더 나아가 전래 문화를 제대로 보전해 지키는 길이기도 한 때문.
하지만 지방 정부들은 시민들의 산에 대한 태도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기게 한다. 올해로 '자연 공원' 지정 25주년을 맞은 팔공산이 겪은 일이 그 의심증의 한 단서. 만약 어떤 기업이 창립 25주년을 맞았더라면 큰 잔치라도 벌였을 것이다. 하지만 팔공산의 공원 지정 25주년은 지정 당국조차 모르고 지냈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지난 5월 13일 맞았던 지정 공고일은 버려진 아이의 생일을 연상시킨 날이었다.
물론 지난 25년간 대구시청과 경북도청은 팔공산에 대해 많은 일을 했다. 적잖은 문화 분야 보고서가 나왔으며 상가지구들이 정비되고 남사면 순환도로와 남북 간 종단도로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된 일일까? 그 모든 일의 가장 기본 되는 그림이 '공원 계획'이고, 더 기본 되는 것은 지리 정보의 정확한 파악일진대, 그런 분야의 일은 25년 동안 엉터리로 그냥 방치돼 오고 있으니 놀랄 일 아닌가. 흔히 '공원 고시'라 불리는 공원 계획에 나타나 있는 서술은, 잠깐만 들여다봐도 사람을 기절초풍시키고 남을 정도이다.
밑그림이 엉터리이다 보니 곳곳에 세워진 안내판 역시 엉터리가 되고, 덩달아 국가의 공식 지도들마저 "바담 풍"을 해대는 모양이다. 공원 구역 안의 모습이 이 지경인데, 관리가 거의 안 되는 그 밖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어느 민간 단체가 엉뚱한 곳에 '용암산'이라는 표석을 세우더니, 드디어는 어느 시청까지 나서서 터무니없는 산 높이 표석을 세워 놨다.
하지만 여기까지도 그런 대로 봐줄 만하다. 그게 엉터리인 줄을 지적해 줘도 고칠 생각조차 할 기미가 없는 것이 더 답답하다. 인편으로 재차 강조해 줘도 결과는 마찬가지. 그러고 보니 문제는 산이 아닌 듯했다. 병이 더 깊은 곳까지 뻗치지 않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며칠 전 들었던 역내 기관들의 국정감사장 주변 풍경이 문득 떠올랐다. 기초단체장 출마 희망자들이 새벽부터 읍을 하고 줄지어 서 있더라는 얘기. 국감에 참가하는 해당 지역 출신 국회의원에게 눈도장 찍으려 그러는 모양이더라고 했다.
어느 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유력하다는 왜곡된 현실, 그래서 시민은 좀 무시해도 문제될 것 없다는 뒤틀린 출세 의식, 그런 현실을 초래한 지역주의, 그런 것들의 망국적 폐해가 여기에 이르렀구나 싶었다.
대구에서 지역 혁신 박람회가 열리고 있다고 했던가? 만날 대회, 대회. 행사만 열면 다 되나? 여전히 손해 보고 무시당하고 억울해 가슴 쳐야 하는 것은 시민들뿐인 모양이다.
朴鍾奉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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