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동막골과 東乙

입력 2005-09-30 11:43:20

"그저 머를 마이 멕이야지 머."

올해 최고 흥행작으로, 젊은층에 강원도 사투리 따라하기와 패러디 붐을 일으킨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나오는 명대사이다.

인민군 장교 리수화는 동막골 촌장에게 큰소리 한 번 안 치고도 촌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비결이 뭐냐고 슬쩍 물어본다. 촌장은 "영도력의 비결? 글쎄…" 하며 잠깐 뜸을 들이다가 "뭐를 많이 먹이면 되지"라고 대답한다.

이 대사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도력'이란 난해한 정치철학 문제를 '먹는다'라는 일상 속의 단순행위로 너무나 명쾌하게 풀어냈기 때문인가? 아니면 아직도 '이밥에 소고기국'이 최대 명제라는 북한의 오늘이 리수화의 질문에 연상됐기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면 외환위기 이후 10년 가까이 불황에 시달려 온 우리의 현실이 떠올려졌기 때문인가?

대구 동을을 비롯한 네 곳의 국회의원 재선거가 다음달 26일 치러진다. 그런데 선거일이 이렇게 잡히자 여당 후보인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야당의 박근혜 대표, 그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 간의 묘한 '인연설'을 떠올리는 이가 적지않은 것 같다.

꼭 26년 전인 1979년 10월 26일은 박 전 대통령이 피살된 날이기 때문이다.

이 전 수석은 경제개발을 내세운 박 전 대통령에 맞서 민주화를 요구하며 유신 반대 운동을 벌였고, 끝내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돼 7년을 복역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재선에서는 두 주역, 이 전 수석과 박 전 대통령의 딸 박 대표의 처지가 정반대로 바뀌었다. 이 전 수석은 지금 지역 발전을 내세우고 있고, 박 대표는 정권 심판을 내건다.

보기에 따라 아이러니한 역사의 순환이 아닐 수 없다.

이 전 수석은 벌써부터 굵직굵직한 지역개발 공약들을 내놓았다. 특히 공공기관 동구 유치에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했다. 중앙과 연결하는 창구가 되겠다고도 했다. 이 전 수석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노무현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대구'경북이 일편단심 한나라당만 찍은 결과가 가라앉을대로 가라앉은 오늘의 살림살이라는 점도 이 수석은 덧붙여 강조한다.

한나라당도 만만치 않다. 한나라당 후보를 뽑는 것만이 실정을 거듭하는 현 정권을 따끔하게 혼내주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어야 진짜 지역발전이 가능하다는 논리도 내밀고 있다. 이번 재선 승리로 박 대표에게 힘을 실어줘서 내년 지방선거, 후년 대통령선거를 승리로 연결시켜야 대구'경북 발전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한다.

동을의 선택이 어떠해야 하느냐를 말하기는 어렵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26일 밤이면 유권자들 선택이 수치로 드러날 것이므로 성급히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겠다.

다만 각 정당과 후보들과 유권자들에게 거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번 동을 재선을 진정 지역 발전을 위한 이성(理性)적인 토론과 고민의 자리로 만들어보자 하는 것이다.

술자리 폭언 파문처럼 국회의원과 피감기관 간 부적절한 '술판' 관행에 대한 진지한 반성 없이 정치 음모설이나 양산해대는 최근의 정치판 모양새는, 그래서 걱정스럽다.

과거 선거처럼 지역감정을 선동하거나 흑색선전에 골몰해서는 안 된다. 밀실 공천으로 유권자를 무시하는 후보를 내세워놓고 "우리가 남이가"를 외쳐서는 곤란하다.

유권자도 선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누구를 뽑아야 우리 살림살이가 나아질지를 따져보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모두들 '머를 마이 멕여 주겠다'고 약속을 하니, 누구 말이 더 진실이고 더 실현 가능한지 간파하는 지혜를 짜내는 것도 절실하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면 당선된 후보나 정당 측은 유권자 지지를 지역발전으로 연결시키는 실천을, 낙선한 후보나 정당들은 다음에 유권자 지지를 더 많이 받아낼 수 있는 발전방안 마련에 착수하는 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동막골 촌민이든, 동을 유권자이든 모두 '머를 마이 멕여줄' 촌장과 선량을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10'26 동을 재선이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1979년의 10'26을 극복하고 모두 상생하는 2005년의 새로운 10'26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이상훈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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