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국일버스 기사들 '절박한 심경'

입력 2005-09-30 09:33:29

국일여객 소속 시내버스기사였던 현모(50·북구 태전동)씨는 요즘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다. 현씨가 암 선고를 받은 건 지난 7월. 한 달에 150만 원 남짓한 버스기사 월급으로는 도저히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15년이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냈다.

퇴직금만이 치료를 위한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사표를 낸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회사는 부도가 났다. 퇴직금을 받지 못한 그는 치료시기를 놓친채 요즘 집에서 약물 치료만 하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29일 오후 대구시 서구 이현동 국일여객 차고지. 국일여객 소속 버스기사 120여 명이 체불 임금 해결을 외치며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벌써 한 달째라고 했다. 국일여객은 지난 달 30일 부도로 버스운행이 전면 중단된 상태. 임금을 받지 못한 지 벌써 4개월 째다.

도로변 인도위에 세워놓은 막 안에서 농성 중이던 버스 기사들은 절박한 심정을 토해냈다. 벼랑 끝에 몰린 생계 때문. 이동욱(43)씨는 "농성을 그만두고 싶어도 대안이 없다"며 "경기침체 때문에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고 수천만 원의 밀린 임금과 퇴직금에 생계가 걸려있는데 어떻게 포기하겠느냐"고 했다.

이재환(36)씨는 "올해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임금 체불로 전세비를 구하기 위해 냈던 은행 대출과 차 할부를 갚지 못했고, 결국 3년동안 사귀었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며 "부도덕한 사업주 한 사람 때문에 얼마나 많은 가정과 인생이 파탄나야 하느냐"고 울먹였다.

또 이 회사 버스기사의 대학생 자녀들은 휴학한 뒤 군입대를 준비하거나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었고 중·고등학생 아이들은 급식비조차 마련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웃에 돈을 빌리거나 신용카드 대출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리 오래 버티지 못했다고도 했다.

특히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는 경우 사정은 더욱 절박해진다. 송일호(41)씨는 "어머니의 백내장 치료를 위해 수술 날짜까지 잡아놓았지만 치료비 마련이 막막하다"고 했다. 임금이 나오지 않자 이들은 노동청에서 임금 체불 노동자를 위해 마련한 저리 융자를 받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신용불량이나 금융 연체로 융자조차 받지 못한 10여 명의 형편은 더욱 딱하다. 한 기사는 "낮에는 천막 농성을 하고 밤에는 대리 운전에 뛰어드는 기사들도 많다"고 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대구시의 대중교통 정책이 운행 중단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입을 모았다. 매년 회사의 운송수익금 중 부족분을 지원하는 대구시가 위탁 관리한 버스 업체들이 지원금을 제대로 잘 사용했는지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왔다는 것.

전국민주버스노조 국일여객 지부 백부현 지부장은 "버스 기사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업체들의 적자 타령은 똑같다"며 "하루 2천만 원의 현금을 벌어들이고 있던 사업주가 고작 4천만 원으로 부도를 내고 잠적했는데도 대구시는 노사문제라며 '책임없다' 소리만 반복하는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버스 기사들의 요구는 한결같았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거창한 게 아닙니다. 그저 일한 만큼 품삯을 받고 일하고 싶을 뿐입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 파업중인 국일여객 기사들이 29일 대구시 서구 이현동 차고지앞에서 임금체불 해결을 촉구하며 천막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채근기자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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