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7일 삼척에서 난 산불은 4월12일 울진 경계까지 접근해 왔다. 강원도 동해안을 초토화시키며 사상 최대의 피해를 입히고 있었던 터라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13일이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일이어서 더욱 절박한 심정이었다.
다행히 삼척과 울진 사이에는 폭이 수백미터나 되는 가곡천이 있었다. 나는 탱크로 방어선을 구축하듯 강둑에 소방차 수십대를 포진시켜 저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회오리바람을 타고 거대한 용처럼 붉은 몸을 꿈틀거리며 방어선을 무너뜨린 산불은 울진으로 넘어와 한층 맹렬하게 타 올랐다. 화세가 워낙 강해 인력 진화는 엄두가 나지 않았고, 강풍 때문에 헬기 이륙도 쉽지 않은 가운데 날마저 저물고 있었다.
대책본부에 모인 관계관들 모두 긴장한 모습이었다. 대책회의에서 강원도 진화과정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군인'공무원'경찰'소방'민방위대 등의 지휘 체계가 달라 효율적인 진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소속이 다른 30여대의 헬기는 육군 항공대장이 지휘하도록 하고 해안도로에 대형 탱크로리를 옮겨와 연료 공급기지로 삼았다. 그리고 모든 지상 인력은 50사단장의 지휘를 받도록 했다. 당시 밤에 맞불을 놓을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지만 워낙 다급한 상황이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다같이 내일 새벽 총력진화를 다짐한 후 대책본부를 나오는데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통령의 걱정이 크다고 하기에 내일 오전 11시까지 끄겠다고 했더니 믿지 못하겠다는 듯 그대로 보고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 역시 처음 겪어보는 엄청난 재난이라 자신할 수 없었지만 무조건 끄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다.
다음날 오전 6시부터 불타는 산등성이를 향해 헬기가 연이어 날아갔다. 군인과 주민들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특히 맞불이 상당한 효과를 거두어 산불의 이동 속도를 지연시켰다. 그러기를 네시간, 1주일 넘게 전 국민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산불은 경북으로 넘어온 지 채 하루가 되지 않아 완전히 진화됐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등 일행은 정확히 오전11시경 울진에 도착해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후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경북이 이룬 기적을 여러번 칭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산불진화 역사상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는 당시의 진화 과정은 안동에 있는 '산림과학박물관'에 가면 엿볼 수 있다. 우리는 그 일을 통해 통합과 협력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지 절감할 수 있었다. 만약 진화에 참여한 기관들이 자신의 입장을 앞세워 힘을 분산시켰다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백척간두의 위험에 섰던 울진 소광리 일대의 춘양목은 지금도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의근 경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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