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잘하는 방법이라고 하면 누구나 귀가 솔깃해진다. 학생이든 학부모든 어디 쉽고 빠른 방법이 없나 신경을 곧추세운다. 쏟아지는 말들과 서점에 수북한 공부 관련 책들에도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곰곰이 들여다 보면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말이 있다. 바로 동기 부여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공부 역시 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하고자 하는 동기를 갖는 것이다. 그것이 강할수록 성과는 커진다. 주위에서는 이런 동기들을 키워주는 데 노력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그야말로 공자왈 맹자왈 같은 이야기다. 문제는 다음 단계, 과연 어떻게 학습 동기를 부여할 것이냐다.
이 때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은 칭찬, 격려 같은 것들이다. 많은 학부모들이 여기에 따라서 자녀 교육을 시도한다. 그러나 막상 해 보면 칭찬만큼 어색한 게 없고 격려만큼 잘 되지 않는 것도 없다. 부모자식 사이에 대화가 적은 경상도 사람들에겐 더욱 그렇다. 어쨌든 아이들은 부모의 변화에 당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감 같은 걸 갖게 된다. 이런 시간이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소망한다.
문제는 우리 아이들보다 부모의 참을성이 훨씬 부족하다는 데 있다. 흔히 칭찬과 격려의 방법론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는 것은 시험 결과다. 기대 이하의 점수, 전보다 나아지지 않는 성적을 보는 순간 세상 모든 전문가의 말들과 책 속의 금언들은 책상머리 이론이 되고 만다.
"내가 창피해서 못 살아. 얼굴 들고 어떻게 밖에 나가겠냐. 너만 잘 해 주면 내가 남부끄러울 게 없는데. 도대체 넌 왜 그렇게 안 되냐." 쓴맛 이후의 달콤함이 두 배라면 달콤함에 이어지는 쓴맛은 이를 훨씬 넘어 애초의 달콤함까지 원망하게 만든다. 이전에 보여줬던 부모의 미소와 칭찬과 격려는 더 큰 상처로 오래 남게 된다.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Y 부르딜이 쓴 '아주 철학적인 하루'라는 책에서 주인공 필은 진리에 대해 고민하다가 이런 생각에 빠진다. '하고는 싶지만 잘할 수 없어서 창피스럽게 여기는 게 누구나 한두 가지쯤은 있게 마련이다. 창피하다는 감정은 자신이 지금보다 좀 더 나아야 한다고 생각될 때 느끼는 것이다.'
이런 창피함은 스스로 느낄 때 변화와 발전의 동력이 된다. 그러나 남에게 창피를 당하고, 게다가 남의 창피함까지 덮어써야 한다면-가령 시험을 제대로 못 쳐서 선생님에게 창피를 당했는데, 집에 와서 다시 "너 때문에 얼굴 들고 못 다니겠다"는 부모의 창피함까지 더해진다면 변화와 발전은 결코 기대할 수 없다.
공부 방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데 비례해 그 부작용으로 고통받는 가정이 많아진다는 건 우리 사회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칭찬과 격려의 방법론이 득세하는 시대에 창피함 때문에 무너지는 가족 관계가 여전히 많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부모가 자녀의 창피함을 먼저 이해해주고 이를 통해 새롭게 동기를 만들어 나가는 공부 방법론을 아직 못 본 것은 기자의 독서 부족일까.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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