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역사

입력 2005-09-24 13:38:54

이종욱 지음/김영사 펴냄

역사는 늘 승자의 편이다. 7세기 후반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면서 고구려 백제는 적었고 신라는 컸다. 삼국시대 한반도인들은 하나의 민족이라는 생각을 갖지 못했다. 다만 뿌리가 같다는 인식만을 가졌을 뿐이었다. 통일 신라를 지나 고려시대 삼국유사 삼국사기가 편찬되면서 비로소 고구려와 백제는 우리의 역사에 편입됐다.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는 의식까지 있었다. 이 후 조선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구려가 우리의 역사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고구려의 역사가 다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말기 무렵, 외세의 침입이 전개되면서 부터다. 고구려 역사는 민족을 결집시키는 수단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는 과정에서 고구려는 한국인의 자부심이자 영광으로 재포장됐다.

이종욱 교수(서강대 사학과)는 일본에 의해 왜곡당하고,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한국의 역사가 강탈당하려는 현실에서 이 책 '고구려의 역사'를 통해 한국사에서 고구려사가 차지하는 위치를 철저히 조명했다.

이 교수는 고대사학계 주류인 후식민사학에 반기를 들며 인류학·고고학·사회학적 관점에서 새로운 역사해석의 패러다임을 주창해 숱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인물이다. '고구려의 역사'에서도 이 교수는 기존의 고구려역사 연구가 만들어 놓은 "고구려사에 대한 왜곡된 틀을 무너뜨리려"시도 하고 있다. 이 교수는 건국신화를 비롯한 초기 기록에 대한 지금까지의 부정적 견해를 버리고, 고구려사에 대한 기존의 왜곡된 주장을 따르지 않으려 했다. 그러면서 비교사학적 관점을 도입해 고구려의 초기 국가 형성·발전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있다.

600쪽에 가까운 책의 분량이 말해주듯 이 책은 고구려 왕국이 만들어져 정복국가로 발전해 전성기를 맞는 과정, 그리고 멸망과 그 이후 과정에 대한 숱한 연구결과를 담고 있다. 그렇다고 딱딱한 이야기들만 던져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구려만의 이야기'를 책 곳곳에 배치, 학술서적 같은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있다. 건국 초기 이미 엄격한 왕법(王法)이 존재해 해명태자와 호동왕자가 자살 할 수밖에 없었다든가, 광개토대왕비의 '백잔(百殘)'이란 표현이 비를 세운 장수왕의 증조할아버지 고국원왕을 죽인 백제인들을 폄훼하기 위한 표현이었다는 점, 광개토대왕비에 '백제와 신라가 예로부터 고구려의 속민으로 조공을 했다'는 기록 등이 고구려인들의 자부심으로 만들어진 고구려 중심의 세계관의 결과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교수가 던진 논쟁들은 "고구려에 대한 허황된 꿈을 버리고 보다 객관적으로 고구려를 생각"함으로써 동북아 3국 간의 '역사전쟁'을 대비하는데 있어 큰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낳고 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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