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내가 찾은 음악

입력 2005-09-16 08:51:50

줄리아 로버츠를 신데렐라로 만든 영화 '귀여운 여인'을 보면 리처드 기어가 데이트 중이던 식당에서 갑자기 피아노를 연주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대학시절 연애 한번 못해 본 나는 이 영화를 보곤 "왜 그 흔한 피아노 학원 한번 보내지 않았냐"고 심드렁한 목소리로 부모님을 원망하며 나의 무능함을 애꿎은 피아노 탓으로 돌렸다. 그만큼 자라면서 유독 음악과는 거리가 멀었다.

저녁 무렵 아파트로 돌아오면 굳게 잠긴 거실 창과 현관사이엔 무거운 공기만 가득하다. 지금 이 공간엔 그림이 아니라 음악이 필요한데 음악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탓에 이 빈 공간을 채우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인터넷 덕분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음악을 찾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흔히 접하는 서양음악은 종교음악에 그 시원을 두고 있어 되풀이되는 선율과 하모니로 우리를 반드시 슬프다거나 혹은 기쁘다거나 하는 감정적 몰입상태로 이끈다. 신나는 것도 슬픈 것도 없이 그저 적막해서 틀어보는 음악인데 듣다보면 그런 감정에 고조되어 버리거나 어떨 땐 강요당한다는 느낌마저 들어 왠지 부담스러웠다.

몇 년 전에야 드디어 입맛에 맞는 음악을 찾았는데 그것은 가야금 산조였다. 단지 음 하나 하나의 깊이를 들려줄 뿐 화음을 통해 의도된 감정으로 이끄는 법이 없다. 그래서 무척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을 뿐더러 음과 음 사이의 관계는 매번 들을 때마다 새로웠다. 문득 그림에 빗대어 생각해 보니 현대미술의 특징과도 닮은 점이 많다. 어떤 주제나 모습을 애써 설명하려 하지 않는 점이나, 단음과 가락이 마치 추상화의 점과 선처럼 작품을 이루는 핵심이 되는 모습이 그러하다. 이런 가야금 산조를 들을 때면 좁다란 개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걸어가는 친구처럼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서로 미소지으며 마주보는 느낌이 나를 즐겁게 한다.

이두희 경주아트선재미술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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