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에 지친 시청자 끌어안기
가을 바람 덕분일까. 안방에 대작 사극 풍년이 들었다. 지난 5일 SBS '서동요'가 전파를 탄 데 이어 24일에는 MBC '신돈'이 안방을 찾는다. 사극 바람은 내년까지 이어져 MBC '삼한지', 김종학 프로덕션의 '태왕사신기', SBS '연개소문', KBS '대조영'이 잇달아 방송될 예정이다.
◇고대사 재조명 붐=사극의 배경 무대가 넓어지고 있다. 주무대였던 조선시대를 훌쩍 넘어 고려와 고대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5일 첫 방송된 SBS '서동요'의 배경은 백제의 기술 문화가 절정기에 달한 6~7세기다. 멜로를 바탕으로 최첨단 과학기술을 보유한 백제와 이를 뒤쫓는 신라의 치열한 경쟁이 그려진다.
24일 전파를 타는 MBC '신돈'의 시대적 배경도 조선이 아닌 고려 말기다. 요승 또는 고려를 패망으로 이끈 장본인으로 알려진 신돈과 그의 개혁정치를 재조명하겠다는 의도.
내년에 방송될 드라마들의 '고대사 편식'은 더욱 심하다. 배용준 주연의 '태왕사신기'와 MBC '삼한지'는 동명성왕 등 고구려 건국 시기부터 훑어 내릴 예정이다. '태왕사신기'는 고구려 광개토대왕, '삼한지'는 고구려 동명성왕이 주인공이다. KBS는 내년 하반기부터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을 100부작으로 방송한다. 국내 TV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발해사를 다루는 이 드라마는 대조영이라는 인물의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집중 조명하게 된다. SBS는 고구려 을지문덕과 연개소문의 활약상을 담은 드라마 '연개소문'을 준비하고 있다. '야인시대', '영웅시대'를 집필한 이환경 작가와 '토지'의 이종한 PD가 호흡을 맞춘다.
◇풍성한 볼거리= 장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만큼 볼거리도 다양하다. 해외 로케이션이 줄을 잇는 것은 물론 삼국시대와 발해, 고려 시대의 건축양식과 교통수단, 복식, 장신구, 머리 스타일 등 그 시대의 생활양식을 생생하게 재현하기 때문. SBS '서동요'의 제작진은 "백제를 한국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재현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충남 부여와 전북 익산에 100억 원을 투입해 백제시대 세트장도 마련했다. 칠지도, 금동대향로 등 당시 과학기술의 수준을 대변하는 문물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할 예정.
고려말기 공민왕 시대를 다룬 대하사극 '신돈'은 기획기간만 4년에 17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대작. 이미 광활한 중국 로케이션을 마쳤다.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공민왕(정보석)이 원나라 노국공주(서지혜)와 만나 결혼에 이르고, 다시 고려로 돌아올 때까지의 장면과 신돈(손창민)이 중국 사막을 거쳐 고행을 하며 티베트로 향하는 모습을 담았다. 용인시와 함께 100여 억원을 투자, 용인에 반영구적인 오픈세트를 짓고 있다. MBC는 '삼한지'를 위해 전남 나주시와 함께 나주에 '삼한지' 세트를 건립하고 있다. 총 제작비 300억여원이 들어가는 '태왕사신기' 역시 강원도 평창에 대규모 오픈세트를 짓기로 했다. 제작사인 김종학프로덕션은 "신화를 드라마화하기 위해 홀로그램도 준비하고 있으며, 특수효과를 위해 영화 '반지의 제왕'의 특수효과팀이 합류한다"고 밝혀 관심을 끌었다.
◇역사에 상상력을 입힌다=올 하반기 이후 찾아올 사극들은 표현하는 역사의 폭을 대거 넓혔다는 점이 특징이다. 기존 사극들이 고증이 쉬운 조선시대에 치중했다면 새롭게 브라운관을 장식할 사극들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등 다양한 역사적 시기를 대상으로 한다. 고대사는 실질적인 고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작가의 상상력이 파고 들 공간이 많은 것이 장점.
역사 속 인물의 현대적 재해석 또한 관심거리다. 선화공주(이보영 분)와 사랑을 나누며 백제 무왕으로 등극하는 서동의 파란만장한 일대기와 광활한 중국 대륙을 누비던 광개토대왕의 리더십, 나라를 어지럽힌 요승에서 개혁의 선구자로 거듭나는 승려 신돈은 다양한 의견과 토론의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이처럼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사극들은 팬터지에 열광하는 20, 30대와 신데렐라 스토리와 젊은 남녀의 멜로에 지쳐있는 중장년층 시청자들을 동시에 브라운관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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