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저 출산율의 우리나라에서 연간 35만여 건의 낙태로 출생아의 73%에 맞먹는 수의 아이가 세상 빛을 못 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충격을 안겨 준다. 보건복지부와 고려대가 정부 차원에서 처음 실시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태어난 아이 수(47만6천52명)에 버금갈 만한 35만여 명의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사라져 갔다는 얘기다. 한쪽에선 출산 장려책에 골몰하는데 한쪽에선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낙태로 죽어 가는 현실. 그야말로 모순이다.
저출산 문제는 이미 우리네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고 있다. "낙태되는 아이 수만큼만 낳아도 저출산 문제는 단번에 해소될 것"이라는 농담이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낙태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는 '생명'에 대한 우리의 의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밥 먹듯이, 너무 쉽게 낙태를 한다. 기혼 여성 3명 중 1명꼴의 낙태 경험은 '낙태의 일상화'를 말해 준다. 15만 건에 육박하는 미혼 여성의 낙태, 2%에 달하는 15세 미만 소녀들의 낙태 현실도 놀랍다. 남아 선호, 성 개방 풍조, 의료계의 불법 낙태 방조 등이 낙태를 부추기고 있다.
저출산도 문제지만 낙태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게 됐다. 책임 있는 성 의식, 생명 존중 의식의 확산 대책이 시급하다. 급변하는 사회 현실을 수용, 미혼모들이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여건 조성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불법 시술에 대한 의료계의 자성 역시 말할 필요조차 없다.
복지부는 13일 학계, 여성계, 종교계 등이 참여한 가운데 공청회를 열어 낙태 예방 관련 정책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실을 고려한 탄력적이고 효율적인 개선안을 만들어 줄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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