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향토인들]향우회-(13)영주

입력 2005-09-12 16:37:19

忠·孝;禮정신문화 꽃피운 '선비의 고장'

경북 북부지역이 대부분 그렇듯 영주도 궁벽한 곳이다. 농사지을 땅도 좁고 최근들어 각광받고 있는 사과를 제외하면 특별히 돈이 될만한 물산도 없다. 그만큼 가난한 동네다. 그래서 영주사람들은 재주가 있어보이는 자녀가 있으면 일찍 서울로 보낸다. 우리사회 각 분야에서 두드러진 영주 사람들이 많은 것은 바로 이러한 가난에서 비롯된 교육열 때문이다.

영주출신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가 정계이다. 17대 국회에서 경남 산청출신으로 국회의원이 6명이나 나와 '산청의 특산물은 산나물이 아니라 국회의원'이란 우스개소리가 있었는데 영주도 마찬가지다. 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의 홍사덕·박시균·권태망·박세환, 열린우리당의 안영근 등 5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한데 이어 17대 국회에서도 한나라당의 장윤석·유승민, 열린우리당의 안영근·장향숙, 민주당의 손봉숙 등 5명의 의원을 냈기 때문이다. 4선 의원으로 교통부장관을 역임한 고 김창근씨와 신민당 부총재를 지낸 고 박용만 전 의원도 영주가 고향이다.

관계에도 인물이 많다. 개발시대의 대표적인 경제관료로 치밀한 기획력과 탁월한 추진력으로 정평이 났던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는 영주가 낳은 대표적인 관계인사이다. 어릴 때 집안이 워낙 가난해 부산에 사는 누님 집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지난 97년 외환위기의 암운이 드리워지기 시작했을 때 우리 경제의 '구원투수'로 전격 투입되기도 했다.

이곳 출신 관계인물의 맥을 잇는 두번째 주자가 이영탁 통합거래소 이사장이다. 행시 7회로 구 재정경제원 예산실장, 교육부차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국무조정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예산실장 때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신임이 매우 두터웠다고 하며 선이 굵고 호방한 성격으로 부하 직원들의 신망도 높았다고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동서인 금진호 전 상공부장관, 주 스웨덴대사를 지낸 금정호 세명대 객원교수, 재정경제원 교육문화예산담당관과 기획예산처 기획예산담당관을 지낸 김주영 서울시경영기획단장 등도 영주에서 배출됐다.

영주가 낳은 무장(武將)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육군참모총장 출신으로 10·26 사태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김계원 전 대통령비서실장, 12·12사태 당시 신군부에 맞서다 직속 부하들에 의해 총상을 입고 강제 전역당한뒤 지난 89년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됐던 비극의 군인 정병주 전 특전사령관, 11-12대 감사원장을 지낸 황영시 전 육참총장, ROTC 1기로 ROTC출신으로는 최초로 4성 장군에 올랐으며 한나라당 의원시절 국방전문가로 통했던 박세환 전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육군 군수사령관을 지낸 김석원 전쟁기념관장, 정국본 전 해병대 소장도 동향 인사이다.

법조계에도 중량급이 많다. 대표적인 인사가 '당대 최고의 수사 검사'라는 명성을 얻었던 이명재 전 검찰총장. 사시 11회로 한번도 피의자를 윽박지르거나 구타하지 않는 '신사적 수사'로 유명했다. 이경재 전 중소기업은행장이 그의 형이며 이정재 전 금융감독위원장과 이병재 우리은행 부행장이 동생이다. 또 심리학계에서 인정받는 학자인 이춘재 가톨릭대 심리상담대학원장이 누나이다. 이중 이경재·이명재·이정재 3형제를 묶어 '영주의 3재(才)'라고 하는데 이병재씨까지 은행 경영진에 합류함으로써 '영주 4재'라는 말이 새로 생겨나기도 했다. 이병재씨는 경북고와 고려대에서 야구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2차 인혁당 사건 공판정에서 '사법살인 중단'을 외치다 중앙정보부에 끌여가 온갖 고초를 치르고 구속되기까지 했던 강신옥 변호사, 법무부 검찰국장 재직시 강금실 전 법무장관과의 갈등 끝에 사직하고 정계로 들어선 장윤석 의원, 대구·인천 지검장과 서울 고검장을 거친 강신욱 대법관, 조동석 제주지검 차장검사, 최교일 대검 과학수사기획관, 우병우 법무부 법조인력과장 등도 영주사람이다.

경제·금융계에는 이경재·이정재씨 외에 김준엽 전 신탁은행장, 장진석 전 중소기업은행 이사 등이 있다. 기업인으로는 안상인 안국석유산업 대표, 최용환 대우건업 회장, 안진국 극동제약 대표, 강신국 ㈜오뚜기 대표, 조동락 대군토건 대표, 지승동 대명종합건설 회장, 전진호 한국통신 프리텔 사장, 김덕호 일맥의료재단 대표 등이 있다.

문화·예술계에는 2002 한·일월드컵 개막식 연출자였던 손진책 극단 '미추' 대표, 서양화가로 외교통상부 미술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이두식 홍익대 교수, 시사만화 '청개구리'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 농민신문 편집국 화백으로 활동중인 김판국씨, 췌장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눈앞에 둔 중년 남자가 가족들에게 보여주는 눈물겨운 사랑을 통해 우리시대 아버지의 자화상을 그린 소설 '아버지'의 작가 김정현씨가 대표적이다. 김정현씨는 서울 시경 강력계 형사로 13년간 근무하다 지난 91년 '함정'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변신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이밖에 소설가 이정섭·이정두, 서예가 석진원, 동양화가 이정현, 무용인 안은미씨도 있다.학계에는 정범진 전 성균관대 총장, 손광수 광영교육재단 이사장, 김수진 서울대 교수, 김광윤 아주대 교수, 우홍구 건국대 교수, 최국광·송인갑 인천대 교수 등이 있으며 언론계 인사로는 황헌 MBC 파리 특파원, 김지영 경향신문 편집인 등을 꼽을 수 있다.

정경훈기자 jgh031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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