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부터 회복하자

입력 2005-09-12 11:50:34

'대한민국에 걱정거리 두 개가 있다. 하나는 태풍이고 하나는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비행기 타고 나가니 열흘은 조용할 것이고 태풍만 막으라.'

노무현 대통령이 멕시코로 출장을 떠나면서 던진 우스갯소리다. 이왕 솔직하고 편안한 농담을 본인이 먼저 꺼냈으니 그분의 다변(多辯)에 대해 시중서 떠도는 또 다른 '개그'도 소개해 보자.

'대한민국에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해인사 큰스님 머리에 머리핀 꽂는 일이고 또 하나는 우리 대통령님 입에 테이프 붙이는 일이다.'

(어디까지나 중생들이 지도자를 풍자하다 보니 나온 악의 없는 비유인 만큼 불교 교단의 어른이신 큰스님께서는 무례함 대신 우스갯소리로 흘려 들어 주십사 합장 드린다.)

권력 통치자에 대한 블랙 유머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있어 왔다. 그러한 정치성 유머는 풍자의 대상이 되는 지도자의 카리스마(권위)가 약화될 때 더 잘 번진다.

20%대의 지지도에 맴돌고 있는 우리 대통령의 경우 당선 초기의 카리스마는 민초들의 술자리나 인터넷 댓글, 택시 안 대화 속에서 갖가지 새로운 개그가 끊임없이 만들어져 입으로 입으로 번지면서 날이 갈수록 사그라져 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마음에 차지 않는 지도자를 술안주 삼아 풍자하고 카타르시스를 해소하는 것도 막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국가를 이끌어 가고 있는 지도자가 계속 우스개 대상으로 기 꺾이고 이죽거림 당하며 권위를 잃어 가는 것은 좋은 현상이 못된다.

비록 블랙유머가 번지는 원인이 지도자 본인의 부덕 탓이다 하더라도 카리스마를 계속 깨기보다는 출발 당시의 카리스마가 회복 유지되는 쪽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옳다.

대선 당시 노사모와 젊은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어갔던 초기 카리스마는 낡은 타성에 지겨워진 대중이 뭔가 새로운 모험과 긴장을 기대할 때 나타나는 일종의 바람 덕분이었다.

그게 불과 2년 남짓 만에 무너지고 있다. 대중심리학자들은 카리스마를 만들어 낸 지도자에게 실망하고 애정이 식으면 지지가 분노로 바뀌는 '애정의 피로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지금 '노무현 카리스마'에는 애정 피로 현상이 너무 일찍 나타나고 있다.

기대와 사랑이 분노와 미움으로 바뀌면서 풍자들이 대놓고 쏟아져 나오는 것도 피로 반응의 하나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어느 쪽에도 유익할 게 없는 카리스마의 실추와 그로 인한 민심의 애정 피로 현상을 버려둔 채 계속 키득거리고만 있을 것인가.

카리스마가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노 대통령은 두 가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원래 카리스마를 만들어 낸 권력자는 자신의 카리스마가 위협받을 때 의도적으로 위기 상황을 조성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걸핏하면 대통령직을 내거는 일이나 부동산과 '전쟁'을 하겠다는 등 자극적인 언동을 통한 긴장 조성이 그런 수법이다.

대중은 그런 경우 즉각 애정 피로 현상을 보인다. 신뢰와 애정 대신 분노와 미움으로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더 이상 위기 상황 조성을 카리스마 유지 기술로 써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순리를 깨달아야 한다.

두 번째는 실수나 실패를 했을 때 즉시 솔직하게 시인하고 적어도 잠시 관대하고 유연한 자세로 코앞에 닥친 현실 문제부터 대처하는 것이다. 실정이 빈번했던 모택동도 바로 그런 방식의 카리스마 관리 태도로 오랫동안 통치 권위를 유지해 간 케이스다.

실정(失政)에 대한 야당이나 언론의 비판에 대해 유연함과 관대함보다 카리스마에 대한 도전인 양 부릅뜬 눈으로 따지고 소송 거는 '노무현 형(型) 카리스마'로는 탄탄한 카리스마의 유지가 어렵다는 말이다.

지도자가 신뢰와 권위를 상실하면 모든 게 뒤죽박죽 끝이다. 그래서 귀국 후 노 대통령의 과제는 어쩌면 경제보다도 카리스마의 회복이 더 우선일지 모른다.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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