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입력 2005-09-10 09:27:18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이왕주 지음/효형출판 펴냄

'영화는 짧고 인생은 길다.' 대박을 터뜨린 영화도 철이 지나면 팬들의 뇌리에서 쉬 잊혀지기 마련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영화들이 등장하고 사라진다. 저자는 이런 현실이 시장 논리 때문만은 아니라고 진단한다. 저자는 이 것이 우리가 영화를 만나는 서투름 때문 아니냐고 되묻고 있다. 기대속에 성급하게 다가섰다가 보고 나면 먼 기억 속에 묻어 버리는 우리의 서투름 때문 아니냐고.

이 책에서 저자 이왕주 부산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영화를 철학과 접목시키고 있다. 한번 보고 잊혀지기 마련인 영화 속에서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숨어 있는 철학 개념들을 발굴하고 있다. '슈렉'을 비롯 '동사서독', '매트릭스', '여인의 향기', '흐르는 강물처럼' 등 스물아홉편의 영화가 소재다. 그리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투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하이데거와 니체를 거쳐 들뢰즈와 부르디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상가들이 영화마다 등장한다. 영화별로 그리 길지 않은 분량으로 글을 쓰면서도 저자는 존재론과 인식론, 윤리론을 거쳐 행복론에 이르기까지 철학적 개념들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철학 입문서는 아니다. 무엇보다 어렵지 않다.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일상 생활과 영화를 본 체험과 함께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있다. 철학이라고 하면 딱딱하게 여겨지고 재미없게 여겨지기 마련인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질 겨를이 없다.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들도 영화 내용을 짐작하며 저자의 사고를 따라갈 수 있을 만큼 상세한 설명과 함께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자기도 모르는 채 온 세상에 자신의 삶이 노출되며 감시받고 살아가던 트루먼(트루먼 쇼), 아름답게 꾸며진 동화세계의 논리에 따라 거짓 모습으로 살아온 피오나 공주(슈렉), 게임기 속 세상에 빠져 진짜 세상은 모르고 살던 여섯 살 꼬마(집으로…) 등은 모두 자기도 모르는 구속에 얽매여 자신을 잃고 살던 존재들이다.

저자는 외친다. 유목민처럼 떠나라. 위반의 정열에 빠져 보라. 밖으로 나가서 소통하라.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버릴 수 있는 자만이 해방을 얻을 수 있다. 진짜 삶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위반의 정열은 어렵고 혁명적인 것이 아니다. 자기 존재를 정면으로 볼 수 있고, 지금까지 모르던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의지만 가지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다 보면 종종 고통스러운 상처와 부딪힐 수도 있다. 천재적인 지능에도 어릴 적 상처를 극복 못해 거친 행동을 일삼던 윌 헌팅(굿 윌 헌팅)이나 아버지의 가혹한 학대로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던 코일(쉬핑 뉴스)이 그렇다.

저자는 행복에 대해서는 타인을 이해하고(여인의 향기), 타인의 취향을 인정하고(타인의 취향), 그 아름다움에 시선을 돌릴 줄 아는(흐르는 강물처럼) 것이라고 쓰고 있다. 행복을 얻기 위해 때로는 딱딱한 세상의 인습에 좌절하지 않고 그것에 도전하는 행동주의자(오아시스)가 되어야 할 때도 있다고 쓰고 있다. 행복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에게, 행동하는 자에게 온다는 것, 이 것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라는 것이다. 정창룡기자 jc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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