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어두컴컴한 반지하에서는 햇볕 한번 쐬기가 힘들다. 오늘따라 창 앞으로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마음이 더 심란해진다. 그 때 그 사고만 없었더라면…. 되돌릴 수 없는 일을 또 탓해본다.
저렇게 고개를 돌리고 벽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남편 정성두(47·서구 비산동)씨. 그는 팔, 다리, 갈비뼈가 다 부러진 채 4개월 간의 혼수상태에서 의식을 회복 중인 중환자다.
올 1월 1일 설날 아침, 그는 굳이 가족의 만류에도 출근했다. 그는 식당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숯불을 피워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같이 아침밥을 먹었고 잘 먹었다며 큰 트림도 했다. 여느 아침 출근길처럼 '금방 다녀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휘파람을 불며 떠났다. 불과 2시간 남짓 지났을까. 남편은 가톨릭병원 응급실에서 뼈마디마디가 다 부숴진 채 뇌수술을 하고 있었다. 대뇌좌상, 외상성경막밑 출혈, 폐쇄성두개골 골절, 다발성 좌상…. 그의 상처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섬뜩할 정도로 심했다. 뇌수술은 오래 걸렸다. 제발 죽지 않게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9시간 쯤 뒤 만난 남편은 나조차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왼쪽 허벅지에서 대퇴부에는 철을 박아넣었다. 오른쪽 팔꿈치는 모조리 부숴진 것도 모르고 한참을 허비했다. 부서진 뼈들이 서로 뒤엉켜 붙어버렸고. 결국 뒤늦게 통증을 호소한 남편 덕에 뼈가루를 모조리 긁어내고 철을 박아넣는 수술을 했다.
보험은 무용지물이었다. 네거리에서 서로 직진하며 충돌한 오토바이와 승용차 사고. 의식을 못 차리는 통에 당시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던 남편에게 100% 과실이 돌아왔다. 신호위반이랬다. 하지만 사고 다음날 찾아간 현장에는 오토바이에서 날라간 남편이 어디에 떨어졌는지조차 체크돼 있지 않았다. 남편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인데…. 위반했을 리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남편은 이제 언어장애인이 됐다. 다친 뇌부위가 언어를 통제하는 기관이란다. 그래도 '어버' '어버' 하는 말을 처음했던 지난 6월, 가족은 뛸듯이 기뻤다. 그래 옳치 여보. 잘한다. 아버지 힘내세요.
그리고 지금 엠보싱 화장지 여덞 박스를 나란히 놓고 간이 침대를 만들었다. 그 위로 두꺼운 이불을 올리고 남편을 뉘었다. 지금 형편에서는 이 정도 밖에 남편에게 해줄 수 없다.
난 울지 않았다. 2년 동안 시장골목의 한 막창집을 운영하면서 보증금 1천800만 원을 고스란히 날려도 울지 않았다. 은행에서 대출받고, 친구들에게 수술비며 병원비를 빌릴 때도, 남편이 말을 못하고, 다친 팔을 휘저을 정도로 바보가 됐을 때도 울지 않았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됐을 때도, 우리 가정이 불우이웃이 됐다는 사실도 날 울리지 못했다.
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잖아 여보. 근데 요즘은 자꾸만 눈물이 난다.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 전세금을 다 빼내도 턱도 없는 진료비가 나왔더라. 곧 건강보험공단에서 청구서를 보낸대. 세상이 참 살기 힘들다. 우리 대명동 한 사글세 방에서 한푼 한푼 모으며 애들하고 살았던 때가 너무 그리워. 돌아가고 싶지 자기도?
오늘은 비가 하염없이 쏟아진다. 김영순(43·여)씨는 남편 곁에서 "비가 오면 더 쑤시고 아프다는데···"라고 읖조리며 온몸을 주무르고 있었다. 한바탕 요란한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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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 교통사고로 온 몸이 망가진 남편 정성두씨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길이 너무 처연하다.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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