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입력 2005-09-06 16:57:13

오랜만에 고향에 갔다

간밤에 마신 술 탓에

새순 나오는 싸리울타리에

그만 누런 가래 뱉어놓고 말았다

늦은 귀향길 안쓰런 마음 더해가는

고향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실수에

무안(無顔)해하는데

때마침 철 늦은 눈이

내 허물을 조용히 덮어주고 있었다

도광의(1941~) '이런 낭패'

고향은 생명이 시작된 모성공간입니다. 우리가 도시생활에 찌들고 지쳐서 찾아가면 언제나 어머니처럼 그 넉넉한 품으로 감싸주고 위로해 주는 곳, 그래서 우리는 고향에 가면 어린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리고 실수를 하며 떼를 쓰지요. 시인은 오랜만에 고향에 갔습니다. 그런데 '간밤에 마신 술 탓에/ 새순 나오는 싸리 울타리에/ 그만 누런 가래를 뱉어놓'는 실수를 한 모양입니다. 얼마나 안쓰럽고 무안한지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해하고 있습니다. 아, 그런데 놀라운 일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철 늦은 눈이 내리면서 시인이 저지른 어이없는 실수를 남들이 모르게, 조용히 덮어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얼마나 포근하고 자비로운 모성입니까? 모든 것이 용서되고 포용되는 모성공간…, 고향을 가진 사람은 정말 행복합니다.

이진흥(시인)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