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후한 헌제 때 동우라는 사람이 있었다. 학문하기를 즐거워한 그는 항상 책을 끼고 다니며 틈나는 대로 책을 읽어 경전에 주를 달 수 있는 경지에까지 올랐다고 한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編義自見)'이다. 어떤 책이든 백 번을 읽으면 그 뜻을 저절로 알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 교과서에도 오랫동안 등장했던 이 말은 세계의 지식이 광속으로 연결되는 요즘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뜻글자인 한자의 특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문장 형태, 책이 귀하던 과거의 시대 상황 등은 오늘날의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
그래도 기자는 독서와 논술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는 학부모들을 만나면 이 말을 가끔씩 인용한다. 학부모들의 질문은 대개 이런 식이다.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히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책을 빨리 읽도록 하기 위해 속독을 가르치는 건 어떨까요?", "읽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두꺼운 책은 중요한 부분만 뽑아서 읽으면 어떨까요? 여러 책의 중요한 내용을 정리한 다이제스트형 책은 보면 안 되나요?"
읽어야 할 책은 많은데 학교다 학원이다 해서 실제 책 읽을 시간이 많지 않은 자녀들을 보는 부모들로선 당연한 질문일지 모른다. 속독이나 발췌독 같은 걸 배우면 왠지 이런 고민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이런 학부모들에게 굳이 독서백편 어쩌고 하는 이유는 속독이나 발췌독의 효과나 필요성을 부정하자는 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빠르기나 추려냄 역시 내용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뜻인즉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아무리 재미있는 책이라도 백 번이나 읽는다는 것은 책이 많지 않던 예전이라고 해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인간의 도리나 삶의 철학을 다룬 경전들이라면 보통의 결심으로는 꿈도 꾸기 힘들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문에 대한 탐구심, 사물에 대한 호기심, 세상과 우주에 대한 경외감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사실 이런 것들만 깔려 있다면 한 권을 읽든 백 권을 읽든 얻을 수 있는 깨달음에는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자녀의 독서·논술에 근심이 깊은 학부모들이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도 바로 여기다. 어떻게 하면 빨리, 많이 읽힐까가 아니라 한 권의 책을 어떻게 대하느냐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독서나 논술, 속독 학원을 기웃거리기 전에 왜 책을 읽어야 하고, 책을 읽으면 무엇이 좋은지를 먼저 느끼도록 해 줘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책읽기를 즐겨 함으로써 책 읽기의 즐거움을 자녀가 자연스레 보고 배우도록 만드는 것이다. 생활에 바쁘다는 학부모들에게 후한의 동우는 '독서백편의자현'보다 더 따끔한 이야기를 남겼다. "책은 겨울, 밤, 비오는 때의 세 가지 여분을 가지고 하라. 겨울은 한 해의 여분이고, 밤은 하루의 여분이며, 비오는 때는 한 때의 여분이다. 그 여분에 책을 읽는다면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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