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예정지역 안전무방비 '도심속의 지뢰' 로

입력 2005-09-05 10:22:53

대구에만 100여곳…행정 손길 못미쳐

최근 성행하고 있는 대구도심 재개발. 대구에 100여 곳이 넘는 재개발 예정지는 건물주와 세입자들이 떠난 뒤 본격 공사 때까지 '버려진 도심'이다. 멀쩡한 삶터가 도심 흉물로 바뀐 뒤 '온갖 사고의 시한폭탄'이 도사려 있다.

53명의 사상자를 낸 수성구 수성3가 수성시티월드 옥돌목욕탕 일대도 바로 이런 재개발 예정지였다. 381필지에 세입자를 포함해 800여 가구가 사는 이곳에는 아직 300여 가구가 남아 있다. 주택 대문이나 벽면은 붉은 색 스프레이로 '철거 예정'이라고 커다랗게 휘갈겨 써놓았다. 깨어진 유리창 옆에 해골 표시까지 그려놓아 대낮에도 음산한 분위기였다.

재개발 시행사 측과 보상가 및 이주시기로 적잖은 갈등이 있었다고 주민들이 전했다. 한 주민은 "보기만 해도 섬뜩한 해골 표시는 아직 남아 있는 주민들을 심란하게 해 빨리 떠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수성구 범어3동의 또 다른 아파트 재개발 현장. 골목 곳곳에 '8월 18일부터 철거 예정'이라는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모두 320여 가구가 살고 있었던 이곳은 철거 예정일을 훨씬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주민이 살고 있었다. 주택 벽면이나 점포 셔터에는 빨간색 스프레이로 '철거'라고 적혀 있었고, 동네 꼬마들이 그 속에서 뛰놀고 있었다.

분식점을 하고 있는 한 주민은 "주인이 떠난 집은 밤만 되면 불량 청소년들 아지트처럼 돼 버렸다"며 "재개발지역이라선지 순찰도 없고 치안 무방비 상태"라고 전했다.

노래방, 미용실, PC방 등이 들어선 건물은 창문이 뜯겨있고 일부 주택은 옥상에서 LP가스 연결선이 어지럽게 흘러내려 있었다. 재개발 현장 끝쪽에는 슈퍼마켓과 미용실이 영업 중이었고, '철거 예정'이라는 현수막 아래 LP가스 보관소도 운영 중이었다.

재개발 현장 옆에서 식당을 하는 주민은 "사람이 떠난 빈집은 관리가 안 되다 보니 방화 등 사고 위험이 도사려 있다"며 "목욕탕 폭발사고가 난 뒤 주민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고 전했다.

재개발 때문에 주민 대부분이 이주한 범어1동사무소 주변 주택가. ㄹ아파트 재개발 현장인 이곳에 남아 있는 주민은 11가구뿐이며 빈집이 48채, 상가 등 방치된 건축물이 59개에 이른다.

주민 이모(38·여)씨는 "서둘러 이곳을 떠나고 싶지만 아직 이사할 곳이 마땅치 않아 고민 중"이라며 "사실상 방치된 상가 건물 등에 들어가 누가 불이라도 지르면 무방비 상태이다 보니 밤에는 물론이고 낮에도 길을 다닐 때는 주위를 살피는 게 습관이 됐다"고 걱정했다.

인근 소규모 아파트 2곳은 곳곳에 페인트칠이 벗겨진 채 건물 뼈대만 앙상히 남았고 주위에는 부서진 가구와 문짝 등이 흩어져 있어 음산함이 감돌았다.

재개발 예정지와 길 하나를 두고 살고 있는 박정웅(65)씨는 "한낮에도 흉가 옆에서 사는 것 같아 겁이 나고, 밤에는 근처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며 "사고라는 게 예고를 하고 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불안해 했다.

최두성·채정민·서상현기자

사진: 대구시 수성구 수성3가 재개발 주택가 건물외벽 곳곳에 붉은 글씨로 '철거' '귀신' 등을 어지럽게 갈겨써 놔 아직 이주를 하지 못한 주민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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