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휴양림서 삶의 쉼표를 찾다
공기가 다르다. 코 끝을 스쳐가는 선선한 가을 바람에 솔 향기가 진하게 배어있다. 일하기 좋은 시절이 놀기도 좋은 법. 푹푹 찌는 무더위에서 도망나와 피난가듯 찾아갔던 여름과 달리 가을에 다시 찾은 휴양림엔 여유가 넘쳤다. 8월의 끝자락에 찾아간 영주 소백산 옥녀봉 자연휴양림. 대구에서 출발하면 시간을 넉넉히 잡아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중앙고속도로 풍기IC를 내려서자 도로변에 지천으로 깔린 사과 노점상들이 먼저 반긴다. 아직 인삼 수확철이 아니다보니 간판은 인삼판매점이라고 내걸어놓고 가게 앞에 진열해 놓은 것은 사과 뿐이다. 초가을에 찾아간 풍기엔 온통 사과밭 천지였다. 울긋불긋 한창 익어가는 사과들이 눈 돌리는 곳곳에서 탐스러움을 자랑한다. 과수원 한 편이나 집 앞마당에 드문드문 서 있는 밤나무에는 어른 주먹만한 밤송이가 그렁그렁하다.
소백산 자락에 자리잡은 옥녀봉 자연휴양림까지 찾아가는 길은 그 길 자체만으로도 가을을 만끽하기에 충분하고 여유가 넘친다. 차창을 열자 향기를 잔뜩 배어문 신선한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여름엔 맛볼 수 없던 색다른 공기의 맛이 느껴졌다.
휴양림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안내를 청했다. 여름에 북적이던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쓸쓸한 기운마저 감도는 휴양림을 둘러보며 무심코 한마디 내뱉자 관리사무소 직원 정교완씨는 "주말이면 다시 장날처럼 북적거린다"고 했다.
휴양림의 피크는 7월말부터 8월 중순까지. 예약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산막(방갈로)과 숙박시설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여름보다는 못하지만 가을철에도 주말 예약은 쉽잖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십상. 대부분 휴양림들은 한달 전에 예약을 받는다. 9월1일이면 10월분 예약을 받는데, 유명 휴양림의 경우 1일 아침이면 주말분 예약은 거의 100% 끝난다. 그러나 예약을 취소하는 경우가 적잖기 때문에 포기는 금물. 자주 관리사무소에 문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약이 취소되면 알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무리다. 워낙 그런 전화가 많이 걸려오기 때문에 서너명에 불과한 직원들이 일일이 챙길 수가 없기 때문.
가을에 찾아간 옥녀봉 휴양림의 최고 볼거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아름드리 소나무라고 답한다. 해발 500m 고지에 조성된 휴양림인데다 산세도 워낙 험해 사람들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아 그렇다. 휴양림에 나무가 많은 것이야 당연지사지만 오랜 세월동안 힘들고 지쳐 가지가 꺾여버린, 그래서 멍하니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노라면 지금껏 살아온 삶의 순간 순간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가게 하는 그런 나무를 만나기는 쉽잖다. 옥녀봉 휴양림의 나무들은 비록 기세는 대단할지라도 착하다. 어느 한 그루 툭 불거져나와 홀로 위세를 떨치는 나무가 없다. 그래서 숲을 찾은 사람까지도 순화시킨다.
가을 휴양림에는 오히려 여름보다 놀거리, 볼거리가 많다. 곳곳에 숨바꼭질하듯 숨어있는 꿀밤나무를 찾아 도토리를 줍고, 다소 이르지만 운 좋게 밤나무를 만난다면 떨어진 밤송이를 까는 재미도 쏠쏠하다. 좀 더 여유롭게 산책로를 따라 느린 걸음으로 나무 사이를 금방 빠져나온 바람과 마주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휴양림 인근의 볼거리들을 미리 챙겨 떠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옥녀봉 휴양림의 경우 자동차로 30분 이내 거리에 소백산 국립공원과 희방폭포, 부석사, 소수서원, 풍기온천 등이 자리잡고 있다. 문경이나 상주쪽 휴양림을 찾아간다면 철로 자전거, 클레이사격, 자전거박물관 등을 낮시간에 둘러보고 해질 무렵 휴양림으로 돌아와 하룻밤 묵는 것도 좋은 코스.
여름이면 주중, 주말 가릴 것 없이 휴양림이 붐비지만 가을 휴양림은 주말이 아니면 적적한 마음이 들만큼 고요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매력적인지도 모른다. 잠시나마 일상에서 떠나 삶의 쉼표를 찾으려 한다면 가을 휴양림이 제격이다.
김수용 기자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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