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CEO탐구-(7)애창곡과 음주법

입력 2005-09-02 09:57:52

노래방 18번도 勞使 '동행' 코러스

현대를 세계적 기업으로 일군 고 정주영 회장. 재계의 대표적 '노래꾼'으로 통했던 그는 애창곡이 300곡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300여 곡을 섭렵하기 위해 차안에서도 틈틈이 노래를 따라 불렀고, 출장갈 때엔 비서에게 부탁해 테이프 앞뒷면을 똑같은 노래로 도배해 외울 때까지 들었다는 것. 이렇게 배운 노래를 정 회장은 신입사원 연수 등에서 불러 직원들과의 거리를 좁혔고, 회사의 화합을 도모했다. 흥이 나면 20여 곡을 순식간에 부른 적도 있었다.

특히 시대에 따라 변했던 정 회장의 애창곡들은 그의 인생과 궤적을 같이해 더욱 흥미롭다. 송대관의 '쨍하고 해뜰날'이 전성기를 대변하는 애창곡이라면 말년에 그가 좋아한 노래는 서유석의 '가는 세월'이었다. "세상에 올 때/내 마음대로 온 것은 아니지만/이 가슴에 꿈도 많았지/내 손에 없는 내 것을 찾아/뒤볼 새 없이 나는 뛰었지…"란 '보통인생'이란 애창곡은 정 회장의 인생 역정과 매우 닮았다. 애창곡은 그 사람의 삶을 대변하는 아이콘 중 하나다. 지역 CEO들의 애창곡과 독특한 음주법을 들어봤다.

▲'엽전 열닷 냥'에서 '내 사랑 내 곁에'까지

지역을 대표하는 유통업체인 대구백화점은 매년 '한마음축제'를 열고 있다. 5천여 명에 이르는 '대백가족'이 모여 창업을 축하하고, 사원들 간의 단합을 도모하는 이 자리에선 CEO의 노래를 듣는 것이 중요한 순서 중 하나. 이때 구정모 대표가 즐겨 부르는 노래가 클론의 '쿵따리샤바라', 최성수의 '동행', 그리고 태진아의 '동반자'. 이들 노래 가사가 의미가 있고 곡조도 좋다는 게 구 대표의 얘기. 기독교 신자인 그는 술은 가급적 자제하는 편이지만 비즈니스 또는 직원들과 허물없는 대화를 나눌 경우엔 맥주 반 잔 정도를 마시곤 한다.

이화언 대구은행장의 애창곡은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공원'. 배호와 비슷한 연배인데다 저음이지만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져 듣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매력을 지녀 이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자리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텐더'를 부르곤 한다. 휴대전화 벨 소리인 플라시도 도밍고와 존 덴버의 '퍼헵스 러브'는 이 행장의 애청곡(愛聽曲). 술을 잘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분위기에 맞게 마신다는 게 이 행장 스스로가 내린 음주평. 직원 회식장소나 모임에서 모두가 술을 마시는 분위기라면 다른 사람들이 마시는 만큼 마시지만 스스로가 술이 좋아 마시지는 않는다. 가끔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분위기를 살리거나, 생일과 같은 기념일에는 와인 한두 잔 정도 마시며 가끔은 분위기에 취해 폭탄주 2, 3잔까지 한다고 귀띔했다.

대아산업 등 4개 계열사를 경영하며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박병웅 대표의 애창곡은 '엽전 열닷 냥'에서 얼마 전엔 '내 사랑 내 곁에'로 "발전"(박 회장 스스로의 표현)했다. 직원들이 주는 대로 사양치 않고 받아 마시는 게 음주법이라는 박 대표는 직원들과 삼겹살과 소주 등 서민적인 음식으로 회포를 푼다. 직원들과 허물없이 어울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얘기다.

▲'험한 세상 다리 되어'

장병조 삼성전자(주) 구미사업장 전무(공장장)의 애창곡은 남진의 '님과 함께'. 요즘은 신세대들과 자주 어울리기 위해 발라드나 때론 빠른 댄스곡을 부르기도 한다. 장 전무가 선호하는 음주법은 술 이외에 한가지 정도 테마를 갖고 그날의 술자리를 이끌어 가는 것. 찜질방에서의 회식이나 가벼운 등산을 겸한 막걸리 파티 등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조희정 코오롱 구미사업장 부사장(공장장)의 애창곡은 남인수의 '감격시대'. 경쾌한 리듬에 호감이 가며 어려울 때 이 노래를 부르면 속이 후련해진다고. 조 부사장은 대화를 많이 하고 토론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주량이 줄어드는 술자리를 유도하고 있다.

LG전자 윤상한 부사장의 애창곡은 송대관의 '네박자'. 그가 송대관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소 묘하다. "송대관 씨는 언제나 후속곡을 한두 곡 먼저 준비해 둔다고 합니다. 히트곡이 인기를 끌고 있을 때에도 그는 다음 곡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곡을 만들어서 어떤 자리, 누구와 대화할 때에 들려주고 그 반응을 듣고 다듬고, 고친다고 합니다. 정상에 서서도 내일을 준비하는 것, 어떤 상황이 닥쳐도 준비가 돼 있는 것, 그것이 그의 인기 비결이란 것을 어디선가 듣고 참 대단한 사람, 나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어떤 상황이 닥칠지 알 수 없는 내일을 바꾸는 것은 바로 '준비'라고 윤 부사장은 강조했다.

이상락 HA코리아 대표는 애창곡으로 남진의 '가슴 아프게'를 꼽았다. 남자다운 모습과 분위기를 좋아해 그의 노래들도 다 좋아한다고. 그 중에서 '가슴 아프게'는 부르기 편안해서 계속 애창하고 있으며 노래방에 가서는 꼭 부르곤 한다. 특히 이 노래는 공교롭게도 이 대표가 출생한 연도에 발표된 곡이어서 더욱 애착이 간다는 것. 노래방에서 이 대표가 마지막에 부르는 노래는 사이몬&가펑클의 '험한 세상 다리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 그날의 피로와 쌓였던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려줘 생맥주를 찾는다는 이 대표는 직원들과 기분좋게 호프집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같이 풀기도 하며, 집에서는 2년 전에 직접 담근 포도주를 즐기기도 한다.

이종원 KOG 대표는 술을 많이 못하지만 멤버들과 되도록 많은 시간을 가지려 애쓴다. 애창곡은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 "인생에서 가장 큰 재산은 '만남'"

최영수 책임테크툴 대표의 애창곡은 "해당화~ 피고 지는~"으로 시작하는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너무 자주 불러 젊은 직원들도 이 노래의 앞부분을 따라할 정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 덕분에 술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는 그는 매년 연말마다 직원들과 함께하는 송년의 밤이나 봄철 야유회, 체육대회에서는 맘놓고 술잔을 비운다. 최 대표가 특별히 한잔 하는 날도 있다. 명절을 앞두고 보너스를 지급할 때다. "직원들에게 현금으로 준비한 보너스를 전하면서 그간 외부에서 선물로 받아 뒀던 양주를 꺼내 한 잔씩 건넵니다. 다소 시간이 걸려 퇴근이 늦어지지만 좋은 날을 앞두고 기분좋게 인사하는 그 날의 술이 가장 맛있고 가치 있는 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승일 엑슨밀라노 대표는 직원과 상인, 판매사원이 함께하는 시간이 다른 직장보다 훨씬 많은 점을 감안, '엑슨밀라노 산악회'를 결성해 한달에 한 번 산행을 한다. 또 래프팅도 함께 하면서 체력을 다지고 화합을 도모한다. 행사에서 이 대표가 부르는 노래는 최성수의 '동행'. 한마음을 강조하는 노랫말이 좋아서 애창한다. 녹차와 소주를 섞은 녹차소주를 좋아한다.

신수철 (주)포스콘 대표가 좋아하는 가수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나훈아. 최근엔 젊은이들의 노래를 배우려 애쓰고 있다. 직원들과 술을 마실 때엔 직원들이 가급적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며 직원들이 원할 경우 노래연습장에 가기도 한다.

정용희 삼정피앤에이 대표의 애창곡은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 요즘엔 태진아의 '동반자'를 즐겨 부른다. "'영원한 동반자'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노사(勞使)야말로 영원한 동반자가 돼야한다는 생각에서 CEO가 된 후 부터 즐겨 부르고 있습니다." 과거엔 술자리에 가면 두주불사였지만 요즘엔 실속 있는 음주법으로 고치려 노력 중이며, 직원들에게도 1인당 1병 이내로 할 것을 권하고 있다.

대우일렉트로닉스 구미생산담당 임원 함병철 이사는 노래방을 찾을 경우 마지막엔 노사연의 '만남'을 부른다. "우리 인생에서 만남이 정말로 큰 재산이 아닐까요. 가사가 너무 마음에 와닿아 이 노래를 부릅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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