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국방비와 빈곤문제 해결책

입력 2005-09-01 11:25:26

'우리나라의 빈곤층이 7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지난 8월 중순 보건복지부의 발표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이는 전체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절대빈곤과 소득의 양극화, 그리고 빈곤의 대물림이 결합된 일부 남미 국가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우울한 지표가 아닐 수 없다.

사회복지 분야에 문외한인 필자가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을 내놓는 일은 역량 밖의 일이다. 그러나 빈곤문제를 다루는 언론보도와 정부 대책을 접하면, 뭔가 빠뜨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갈수록 폭등하고 있는 국방비이다. 빈곤문제에 대한 탄식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국방비를 줄이거나 동결해 사회복지 예산으로 쓰자는 주장은 거의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협력적 자주국방'을 국방정책의 기조로 내세운 참여정부는 매년 10% 안팎으로 국방비를 늘려왔고, 내년도 국방예산안으로 올해 20조5천300억 원에서 12.6% 늘어난 23조1천70억 원으로 책정해 놓고 있다. 이를 달러로 환산하면 약 224억 달러로, 이는 세계 8, 9위 수준에 해당된다. 또한 '주적'으로 삼고 있는 북한 국방비의 약 10배에 달하고, 2004년 북한 GDP 208억 달러(한국은행 추정치)를 훨씬 넘어선다. 남북화해협력시대에 북한의 GDP에 맞먹는 국방비를 투입하고 있는 믿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대폭적인 국방비 증액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자주국방'이다. 북한보다 열세에 있는 군사력을 만회해 독자적인 대북 억제력을 갖추고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매년 10% 정도의 국방비 증액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주국방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 군사적으로 미국과는 종속관계에, 북한과는 적대관계에 있다. 냉전 시대에 잉태되었던 이와 같은 기형적인 구조가 극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이 군비증강에 나서면 대미 종속성과 북한과의 적대성이 동시에 강화되는 역설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부시 행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자주국방 노선에 대해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있는 것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또한 1980년 이후 북한보다 3, 4배의 국방비를 쓰고도 북한보다 군사적 열세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군 당국이 무능을 자인하는 것이거나, 국방비 증액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중국 등 주변국가들을 염두에 둔 국방비 증액 역시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경제규모가 7배가 큰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의 국방비는 일본의 45% 수준이고, 경제규모가 약 3배가 큰 중국과 비교할 때 중국 국방비의 60~70% 수준을 지출하고 있다. 이미 주변국들에 비해 경제 능력을 훨씬 상회하는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고, 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 주변국을 상대로 한 전력증강이 필요하다면 비정상적으로 비대한 육군의 비중을 대폭 줄이고 해공군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데, 정부는 여전히 대군주의(大軍主義)를 고집하고 있다.

물론 국방비를 줄인다고 해서 빈곤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동안 국방비 증액의 혜택을 보지 못한 사병들의 복무 환경을 개선하는데 필요한 예산은 늘려야 한다. 그러나 불필요한 전력증강 사업은 마땅히 철회되어야 한다. 기존의 사업 가운데 일부를 축소'폐지하고, 새로운 사업의 일부를 철회한다면 상당액의 국방비 절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령 올해 국방비의 2%만 줄이면, 정부는 2006년 예산안 가운데 약 3조 원을 사회복지비에 추가적으로 투입할 수 있다. 3조 원의 추가적인 예산으로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이와 같은 예산 전환과 다른 사회복지 대책이 조화를 이룬다면, 빈곤의 그늘에서 허덕이고 있는 수백만의 국민들에게 한줄기 햇살과도 같은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