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 파장예고
민족문제연구소가 29일 사실상 해방 이후 처음으로 자체 선정한 친일인사명단 3천95명의 구체적인 명단을 발표함으로써 사회 전반에 상당한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몇차례 예고됐긴 했지만 하지만 이날 발표된 명단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성수, 방응모, 이광수, 김활란, 홍난파, 정일권 등 현재까지 그 영향을 미치는유명인사의 일제하 주요 행적인 이른바 '친일행적'이 낱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또 상당수 인사가 그동안 국내 정규교육과정 등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항일 운동가'로 널리 알려졌던 인물이어서 이날 친일인명사전 발표는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친일문제는 특히 우리사회에서 누군가, 언젠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지만 쉽사리 언급하지 못한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었다.
과거사 청산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타고 발의된 친일진상규명법이 우여곡절 끝에간신히 국회를 통과했지만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에 관한 특별법'이 아직도 표류하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해방정국에서 친일청산 작업을 위해 구성된 반민특위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좌우의 대립과 기득권의 힘겨루기 속에 사그라지기도 했다.
'친일인사'라는 분류 기준에 대한 역사적 논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데다 친일인사로 거론돼 온 인물의 후손이 현재까지 우리 사회 각계에서 영향력있는 위치에 포진해 있는 것도 친일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는데 걸림돌로 작용한 게 사실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민족에 대해 중대한 과오를 저지른 이들이나 이에 관련된 집단도 진정한 반성과 회오를 한다면 언젠가는 용서를 받고 새롭게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명단 발표의 의의를 밝혔다.
이들은 또 "과오를 은폐하거나 미화하려 한다면 언제까지든 역사의 죄인이라는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명단에 오른 인물의 관련자의 협조를 간곡히 부탁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국민 여론을 발판삼아 뜨거운 감자를 '덥석' 움켜쥔 만큼 그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족문제연구소 역시 이 후유증을 간과하지않고 있다.
당장 '친일명단'에 포함된 인물 후손들의 강한 반발과 법적 대응에 부딪히게 될가능성이 높으며 기존 사학계와 마찰, 좌우의 갈등, 민족문제연구소의 자격논란도벌어질 공산이 크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이 "어느 누구가 감히 역사를 재단할 수 있으며 한 인간의 일생을 쉽게 규정할 수 있겠느냐"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히면서도 "친일인명사전은누구를 단죄하려고 만든 게 아니라 과거 사실에 대한 정리와 역사적 평가를 통해 사회의 가치기준을 세우고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고자 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한 것은이런 후유증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단체가 과오를 들춰 단죄나 이를 통한 속죄 또는 사회적인 비난을 받게 하려는 게 목적이 아니라 역사적 진실을 바로 세워 미래로 '도약'하자는 미래지향적인 관점에 무게를 두는 것도 이런 후유증을 감안한 방향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뜻과는 관계없이 이번 '친일명단'이 정치권에 소용돌이를 몰고 올 가능성도 크다. 현직 정치인들과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는 인물이 일부 포함된 만큼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재료'가 충분히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이 이날 '여러 외압이 예상되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친일사전 편찬 작업을 굽히지 않겠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추가로 명단이 발표될 때마다 사회 각계의 뜨거운 관심과 첨예한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사진: 29일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 사전 편찬위원들이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친일인명사전 수록 인물 1차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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