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아름다운 회항

입력 2005-08-27 10:40:46

힌두교의 주신 '시바'의 배우자 '칼리'는 잔인하고 광포하기 이를 데 없는 신이다. 살상과 피를 좋아하는 이 여신은 그야말로 엽기적이다. 해골 목걸이에 사람의 잘린 손으로 엮어 만든 허리띠를 두르고, 잘려진 팔들을 이어 만든 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때 인터넷 자살 사이트의 폐해를 막겠다는 '안티 자살 사이트' 회원들 사이에도 '칼리'시바'통일'부활'이라는 단어들이 등장하는 등 '칼리' 숭배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는 인륜(人倫)이 무너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다. 인명(人命) 경시 풍조도 하늘 높은 줄 모른다. 가정 붕괴까지 동반하는 이런 현상은 사회에 만연해 있는 물질만능주의와 한탕주의, 극도로 비뚤어진 이기주의와 치열한 경쟁 구조가 빚어내는 '산물'들이 아닐 수 없다. 물질생활에 의해 정신이 억압당하고, 지나친 경쟁은 윤리와 도덕은 물론 인간의 존엄성을 날로 땅에 떨어뜨리고 있지 않은가.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향해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 대한항공 017편이 고열로 정신을 잃은 여자 어린이의 안전을 위해 4천만 원 상당의 연료 73t을 공중에 버리고 기수를 돌려 '아름다운 화제'다. 승객 365명을 태운 이 항공기는 25일 오후 이륙 10여 분 뒤 재미교포 이 제시카(5)양이 위독하다(탑승 중이던 재미교포 의사 진단)는 사실을 안 기장이 곧바로 회항하면서 기지를 발휘해 소중한 목숨을 구했다.

○…회항을 결정한 기장은 우선 승객들의 양해를 구했다.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장거리 비행을 위해 135t 가량의 기름이 든 기체의 무게 때문에 바로 착륙할 수 없는 게 문제였다. 기장은 연료 방출이 가능한 동해 상공으로 날아가 무게를 던 뒤 인천공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양은 공항 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게 되고, 연료를 재주입한 항공기는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풍성해지는 사회, 돈도 좋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 지식보다 인간성이 중시되고 성공보다 인간의 기본이 값어치 있게 느껴지는 사회, 그런 인간성 회복의 사회는 지금 어디쯤에서 오기는 오고 있는 것일까. 한갓 꿈에 지나지 않는 '이상향'의 세계이기만 할까. 이번 대한항공의 한 기장이 마음과 몸으로 말해 준 '아름다운 세계로의 회항'이 입으로만 칭송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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