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몇 언론이 세계 각국의 '미래 예측 보고서'를 조금씩 취급했다. 한국 정부에 대한 '주의 환기' 반성의 촉구가 속뜻임은 물론이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보고서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세계 경제의 흐름과 기후 및 환경'윤리 문제의 예측, 전쟁의 양상, 문화적 욕구의 변천 등을 전문가적 시각에서 분석'예측한 이 방대한 보고서를 정보기관이 만든다는 데서 우선 놀라고 그 콘텐츠의 다양성과 깊이에서 다시 놀란다고 한다. 이처럼 ACIA는 '2020년 보고서'를 만든다는데 맙소사 우리의 KCIA는 과거사 '도청 사건'으로 비몽사몽이니….
근원적으로 언론사의 기자(記者) 직군은 정보기관이나 검경 쪽 사람들에게 별로 호감이 없다. 기자들은 캐낸 정보를 기사(記事)로 쓰지 않으면 그걸로 깨끗이 끝이지만 안기부(국정원)나 경찰정보팀은 그 정보를 구워 먹는지 삶아 먹는지, 뒤로 뭘 하는 건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서 얼굴 팔고 사는 사람들이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피해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한 것도 이런 까닭이 하나일 것이다. 간첩도 참 많이 잡았지만 권력의 충견 노릇하느라 지식인들 애도 많이 먹인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CIA의 필요성-그 성급한 해체론이나 '축소지향'에 "이의 있다!" 소리치는 것은 도청이나 인권침해 같은 부정적인 것만 싹 도려낸다면 오히려 그 역할은 확대되고 증대돼야 할 필요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잘한 일 중의 하나가 국정원이란 권력기관의 목줄을 풀어준 것이다. 총 쥔 사람이 총을 놓기가, 칼 쥔 사람이 칼을 놓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의 해방'이 아직은 완전한 것이 못된다는 생각은 YS와 DJ 정권의 도청 사건이 터짐으로써이다. 집권세력의 '국정원 때리기'는 가히 경쟁적이었다.
도청 테이프의 존재가 드러나자 정치권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이해득실의 '주판알 튕기기'였다. 그리고 "국민의 정부 때도 불법 도청이 있었다"는 김승규 원장의 참회 직후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도망치는 호남표'에 정신이 나가버렸다. 여권은 DJ 병상에 꿇어앉다시피 했다. 문희상 대표는 "(발표) 기술이 통 부족했다"며 김 원장을 공격했고 DJ 시절 국정원장들은 계추하듯 모여서 "불법은 없었다"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노 대통령은 "정권이 책임질 만한 과오는 없었다"고 검찰 수사까지 앞질러 버렸다. 도대체 도청이면 그냥 도청이지 '실무 차원'과 '정권 차원'의 차이가 뭔가?
국민은 이 상황에서 두 가지를 읽어 낸다. 하나는 국정원의 중립성이 정치와 권력의 외풍에서 아직은 불변이 아닌 '가변성(可變性)'이라는 사실, 또 하나는 노 대통령이 필생의 정치 과제라는 그 '지역 구도 해체'의 염원도 당장 '호남표의 비산(飛散)'앞에선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국회는 국정원 존폐 논쟁에 들어가 있다. 아예 없애라, 국내 파트만 폐지해 버리자는 실로 아마추어적인 발언들이 튀어 나온다.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성급함이다. 일주일 전 노회찬 의원이 주최한 국정원 개편 토론회 관련 보도 중 연세대 정영철 교수의 주장은 다시 음미할 만하다.
인용해 보면-YS 정부 때 정치권에서 '안기부는 산업'경제 정보에 집중하라'고 강조했는데, 이 발언이 미 의회에서까지 문제가 됐고 그 뒤 한국이 FBI의 경계대상국이 됐다는 거다. 정 교수는 "로버트 김 사건(한국에 대한 정보 제공 혐의로 7년 징역형)도 이 일로 유발됐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어설프게 정보기관의 역할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가 엄청난 바가지를 쓴 이 경험은 우리 정치권의 아마추어적 개혁과 논의를 경계하게 하는 것이요, 동시에 정보기관의 국내'국외 기능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미 CIA가 2020년 보고서를 만들고 일본도 최근 '2030 보고서'를 국민 앞에 내놓는 이 판에 우리의 KCIA는 과거 지향'축소 지향의 정치판에 발목이 잡혀 있다.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국정원장 임기를 미국처럼 6년 아니 10년쯤 보장해 주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기관 강화론이 제기되는 풍토라야 희망 있는 나라가 아닐까 역설(逆說)해 본다.
姜健泰 수석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