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날까지 장애인 위해 일한 장애인 오정헌씨

입력 2005-08-25 10:05:50

숨지기 전날까지 장애인을 위해 헌신한 한 지체장애인의 사연이 뒤늦게 알려져 주위를 숙연케하고 있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를 절던 고(故) 오정헌(54)씨. 그는 7년 전 간경화로 4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도 기적같이 7년을 더 살았고, '장애인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온몸을 바쳤다.

"7년 전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잖소.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

지난 15일 오후 8시 간암 말기로 세상을 등진 남편 오씨에게서 부인 박순애(47)씨가 들은 마지막 유언. 박씨는 남편이 숨지기 나흘 전인 지난 11일부터 장사해수욕장(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서 열린 '대구지체장애인 하계바다체험대회' 선발대로 일했고, 뒷정리로 하루 더 남아 일을 마무리했다. 집으로 돌아온 오씨는 두 다리가 퉁퉁 부어있었고 이내 복통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실려갔다.

"남편은 자신이 간암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어요. 자신이 암인데 어떻게 이렇게 건강하냐며, 얼굴이 나날이 시커멓게 변해가는데도 당신은 야외활동을 많이 해서 그런 것 뿐이라고 오히려 가족들을 안심시켰지요."

오씨는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집안에서는 '0점 아빠'였다고 한다. 오른쪽 다리를 절룩거렸던 그는 뚜렷한 직업 없이 직책만 많았다. 대구지체장애인협회 서구지회 사무국장으로 각종 행사에서 진행을 도맡았다. 또 대구시협회 장애인 체육단에서 코치로 일했다. 북구 요식업조합 대의원이었고 연예인협회의 각종 행사 사회자였다. 지난 4월에는 대구시장의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그의 장애가 이웃사랑에는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았다.

지체장애인협회 동료들마저 장례식장에 가서야 간암 투병 사실을 전해들었다. "아프다는 내색 한번 않았지요. 양로원, 경로당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 사회자로 어찌나 열심히 일했는지. 서구지회에 장애인 공동작업장을 만든 것도 모두 그의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김두수 서구지회장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남편은 제가 식당을 해서 돈을 번다는 사실에 늘 미안해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는 길에 제 손을 꼭 잡으며 '그동안 미안했다'고 말하더군요. 좋은 일을 많이 했으니까 좋은 곳으로 갔겠죠?"

그의 선친과 함께 왜관 조양공원에 묻힌 오씨. 그는 지난 4월 대구시장 표창장을 받을 때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고 한다. "잘한 것보다는 부족한 것이 더 많았는데 상을 받게 돼 부끄럽네요.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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