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호선 여파… '대구의 강남' 흔들린다
대구 주거·교육 1번지, 대구의 '강남'으로 통하는 지산·범물동이 지하철 1, 2호선 일대에 각종 개발이 집중하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지하철 2호선 지역으로 옮겨가는 주민이 생겨나고 있으며 아파트, 상가, 학원가에도 그 여파가 미치고 있다. 지산·범물의 명성을 되찾자는 움직임이 최근 활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동
지난 1991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지산·범물 인구는 90년대 최고 11만명에 육박했다. 동아백화점 수성점이 입점하면서 주변에 황금 상권을 형성했고, 500여개에 달하는 각종 학원들이 줄을 이어 대규 교육 1번지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줄어든 지산·범물 인구는 지난해 말 9만4천명까지 감소했고, 지하철 2호선 개통을 앞둔 지금은 아파트 및 주상복합 개발이 봇물을 이루는 수성구 범어·시지·만촌 일대로의 이동을 앞두고 있다. 이 지역 상당수 공인 중개사들은 "4, 5년 후면 전체 가구의 10% 이상이 수성구 내 지하철 2호선을 낀 지역으로 옮겨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거 개념을 바꿔놨다
지하철 2호선으로 이동하는 주민들이 아파트를 팔기 시작하면서 지산·범물은 주거에 변화가 일고 있다.
동아 수성점 주변 아파트 주부들은 "90년대 말만 해도 2, 3천만원을 더 주고 지산·범물로 이사 온 달서구 대곡, 성서 주민들이 많았다"며 "지하철 1, 2호선 개통으로 상황이 역전되면서 남모를 비애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산동의 김모씨는 최근 자신의 33평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 대출을 신청했다. 하지만 대출액이 4천여만원에 불과한데다 대출금액이 같은 평형의 범어, 만촌 일대 아파트의 절반밖에 되지 않은 사실에 크게 놀랐다는 것.
또 공인중개사들과 주민들은 수성구 2호선 지역의 집중 개발 여파로 지산·범물이 머물러 사는 곳이 아닌, 잠시 스쳐가는 지역으로 바뀌고 있다고 우려했다.
공인중개사들은 "100가구가 이사를 가면 이사를 오는 가구는 70~80가구에 지나지 않으며 최근에는 이사오는 가구의 70%가 전세"라고 비유하며 "1, 2천만을 더 주면 집을 살 수 있는데도 전세를 선호하는 것이 지산·범물의 현 주소"라고 전했다.
지산동의 김현호씨는 "아파트 내 한 통로의 경우 30가구 중 80% 정도가 전세일 정도"라며 "90년대 초·중반 지산·범물동 아파트 대부분이 자기 집인 것에 비하면 10년새 거주 형태가 역전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상가, 학원
범물동 동아 수성점 일대는 대구 최고 상권 중 한 곳이었으며 한 때 수성구 전체의 70%에 달하는 학원들이 이곳으로 몰렸다. 하지만 지난 10일 이 일대 학원, 상가 역시 지하철 2호선 여파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최근 신축한 지하 1층, 지상 15층짜리 건물은 입점한 가게 수가 손에 꼽을 수준이었다. 수도권 2개 업체가 연달아 분양에 실패하면서 한달 전부터 대구 업체가 나서 분양을 재개했지만 입주 문의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인근 상가들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이 일대에 들어선 상가 건물은 10여개, 80여 점포. 1, 2층은 대부분 입주가 끝났지만 지하 및 3, 4층 이상 고층엔 6개월 넘게 비어 있는 점포들이 15개에 달한다는 것.
장사 7년째인 한 상인은 "구점포들이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다"며 "올해만 대여섯 가게가 성서, 시지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전했다. 이 일대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 동아 수성점 일대 중심상업지역을 벗어날수록 위기감은 더 커지고 있었다.
수성못 인근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상가주인은 "3년전만 해도 서로 들어오려고 난리였던 점포"라며 "예전의 3분의 1수준도 안되는 권리금에 가게를 내 놨지만 1년 가까이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카페골목 일대 상가들은 "종업원, 아르바이트생들도 모두 내 보내고 사장 혼자 일하는 가게도 있고, 장사하면 오히려 손해만 나 아예 문을 닫고 보증금에서 월세를 까먹고 있는 곳도 더러 있다"고 했다.
교육 1번지의 위상은 어떨까. 학원 주인들은 위기감이 더 커 보였다. 인구가 갈수록 감소하면서 학생 수가 크게 준데다 학생들을 끌어들이려면 광고, 셔틀버스 운행 등 부대 비용을 더 늘려야 해 순매출도 줄고 있다.
한 학원 주인은 "위기감을 먼저 안 학원들은 3년전부터 시지, 범어동으로 이동하는 추세"라며 "100여개 학원이 밀집한 동아백화점 일대는 올해만 3, 4곳이 철수했다"고 전했다.
◇대책은 지하철 3호선
지산·범물로 통하는 주요 도로는 모두 3개(유료도로인 범안로와 주민 이용도가 낮다는 청호로 제외). 이 중 경찰청 앞과 목련시장 앞 도로는 도로가 좁은데다 교통량이 많아 상습체증에 시달리고 있다. 두산오거리 앞 주도로도 출퇴근 시간이면 체증이 심하다.
또 지산·범물은 셔틀버스 천국이다.
주민 박성일씨는 "대중 교통 이용이 시내 중심에만 편중돼 칠곡, 성서, 월배, 경산 지역 등지로 오고 가는 것이 너무 불편하다"며 "이 때문에 학교, 공공기관, 기업 등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아침마다 동아 수성점 앞에 장사진을 이룬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산·범물 주민들은 수성구의 2호선 지역과 황금동의 신규 아파트 입주가 몰리면 여기에서 발생하는 교통 피해는 고스란히 지산.범물 몫이 되며 주민들은 교통지옥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걱정하고 있다.
지산·범물 주민들은 교통지옥 해소는 물론 대구 주거·교육 1번지라는 옛 명성을 회복하는 길은 지하철 3호선 조기 착공 밖에 없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달 2주간 벌인 '지하철 3호선 조기착공' 서명운동에 주민 3만 2천여명이 동참했고, 지난 주 주민 대표들은 기획예산처장관을 방문, 주민들의 뜻을 전달했다.
주민들은 "지하철 기대 심리가 그나마 지산·범물의 위축 속도를 늦추고 있다"며 "3호선이 표류하면 할수록 아파트, 상가, 학원가의 침체는 가속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은 "대구 도시 균형 발전 측면에서 지금의 2호선이 1호선, 추진중인 3호선이 2호선이 됐어야 했다"며 "지산·범물은 달서구 월배, 성서, 수성구 시지 등지에 못지 않은 핵심 부도심인 만큼 지하철 3호선 조기 착공으로 지산·범물의 도시 기능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이종규 jongku@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사진: 대구 지산'범물동 주민들이 지난 7월 6일 오후 범물 2동 사무소 회의실에서 지하철 3호선 조기착공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조기착공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 김태형기자 thkim21@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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