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 남용범죄 시효 배제법 제정"

입력 2005-08-16 08:34:03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5일 과거사 정리를 위해 국가권력남용으로 인한 인권침해 범죄의 민.형사시효 적용을 배제 또는 조정하고, 과거사 확정판결에 대한 재심이 가능하도록 하는 별도 입법 제정 필요성을 제기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광화문앞 광장에서 열린 제 6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 축사를 통해 "국가권력을 남용해 국민의 인권과 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한 범죄, 그리고 이로 인해 인권을 침해당한 사람들의 배상과 보상에 대해서는 민.형사 시효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조정하는 법률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국가권력의 정당성과 신뢰를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 "국민에 대한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로 국가의 도덕성과 신뢰가 크게 훼손되었다"며 "국가는 스스로 앞장서서 진상을 밝히고 사과하고, 배상이나 보상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과거사정리기본법에 규정이 있고, 올 연말에 출범할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타당성있고 형평에 맞는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며 "그래도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이를 보완하는 법을 만드는 방안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입법을 할 경우에는 확정판결에 대해서도 보다 융통성있는 재심이 가능하도록 해서 억울한 피해자들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 더욱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과거사 정리의 원칙을 제시한 것이며, 시효 적용 배제 대상은 명백한 국가의 범죄행위나 국가권력의 공격행위로 드러난 경우, 국가권력에 의한 사실의 명백한 조작행위로 밝혀진 경우"라며 "특별법을 통해 가능하다고 보며 구체적 대상이나 방법은 추후 입법 논의 과정에서 세부적으로 검토되고 따져질 문제"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형사적인 시효의 배제나 조정 문제는 논의해 봐야겠지만 원칙적으로는 장래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현행 과거사법에 과거사정리위원회 의결로 재심이 가능하지만, 재심사유가 사후위증이 밝혀지거나, 증거조작이 드러나는 경우 등으로 엄격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여론이 있어 법 개정이나 특별법을 통해 이 부분을 확대할 수 있다"며 "또 현행 법에 명확한 규정이 없는 배상이나 보상에 관한 규정도 보완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아울러 우리 사회내 세가지 분열의 요인으로 ▲역사로부터 물려받은 분열의 상처 ▲정치과정에서 생긴 분열의 구조 ▲경제적 사회적 불균형과 격차로부터 생길지도 모르는 분열의 우려를 지적하며 "나라를 지속적 발전의 토대위에 단단하게 올려놓기 위해서, 또다시 나라가 위기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 분열과 갈등의 원인과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지역구도와 대결적 정치문화 해소 필요성을 언급하며 "모든 정치인들이 지역구도를 옳지 않다고 하는데도 선거제도는 고쳐지지 않고 있다"며 "지역구도가 정치적 기득권이 되어버렸기 때문인만큼 정치인들이 과감하게 기득권을 포기하는 용기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 문제와 관련, 노 대통령은 막강한 조직력으로 강력한 고용보호를 받고 있는 대기업 노동조합이 기득권을 포기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려 해고의 유연성을 열어주는 한편 정부와 기업은 정규직 채용을 늘리고 다양한 고용기회를 만들어주는 대타협을 이뤄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 대통령의 국가권력남용범죄 시효 적용 배제 입법 추진 언급과 관련, 한나라당이 "위헌적 발상"이라며 비판하고 나서 향후 입법추진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한나라당 강재섭(姜在涉) 원내대표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헌법.법률체계를 소급해서 무너뜨리고 하면 결국 부메랑이 돼서 돌아와 국가사회가 어지러워진다"면서 "도청사건에 대해 위헌투성이인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수준을 더 뛰어넘는 법을 만든다는 대통령의 자의적인 발상은 안된다"고 주장했다.

맹형규(孟亨奎) 정책위의장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법률에 공소시효까지 없애겠다는 발상은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고, 유승민(劉承旼) 대표 비서실장은 "확정판결이 난 것까지 어떻게 한다는 것은 법질서를 뒤흔드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전병헌(田炳憲) 대변인은 "배상과 보상,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피해자들도 충분히 용서의 마음이 들 수 있고, 진정한 화해를 이룰 수 있다"며 대통령 발언이 형벌소급이 아닌 진상규명에 무게를 싣고 있다고 밝혔다.

전 대변인은 또 "만약 입법이 필요하다면 국회 논의과정에서 야당이 우려하는 위헌적 소지를 없애고, 현실적 틀안에서 배상과 보상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민노당은 국가권력 남용범죄에 대한 민.형사 시효적용 배제에 대해선 "환영한다"면서도 옛 안기부 도청테이프와 관련된 특검법의 수용을 촉구했고, 민주당은 위헌 소지가 있어 갈등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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