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경관은 저마다 다른 색깔과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경치가 있나 하면 그 속에 폭 파묻히고 싶을 만큼 포근한 경치, 봐도 봐도 정겨운 경치, 왠지 마음 설레게 하는 경치, 서러움이 묻어나는 경치 등 여러 모습을 갖고 있다. 그것들은 저마다 세상사로 피곤해 있거나 찢기고 상처입은 가슴들을 어루만지고 다독여 준다. 그러기에 자연은 우리 '영혼의 의사'이다.
○…강영조 동아대 교수(조경학)는 저서 '풍경의 발견'에서 아름다운 곳에 대한 5가지 미학적 관점을 제시해 보인다.
○…태백산 설경, 다대포의 낙조, 담양 소쇄원, 정선 아라리가 흐르는 듯한 강원도 동강, 절벽에 겨우 붙은 울릉도의 해안도로, 언양 작천정의 벚꽃, 남해 가천마을의 다랑 논…. 그 중엔 단박에 사람 눈을 끌 만한 멋진 경관도 많지만 어떤 것들은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의 눈에만 감동으로 와닿는다.
○…'논'의 풍정(風情)이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봄에는 찰랑이는 논물과 연둣빛 볏모, 여름엔 들판을 가득 채운 녹(綠)의 물결, 가을엔 일렁이는 황금빛 파도가 주는 충일함, 겨울엔 빈 그루터기마다 배어 있는 쓸쓸함이 그때마다 사람의 마음을 파고든다. 너무나 익숙한 탓에 일상적인 풍경이 돼 버렸지만 '논'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실상 너무도 아름답고 그 의미 또한 깊다.
○…'논'이 사라지고 있다 한다. 밥 위주의 식습관이 바뀌어져 갈수록 쌀 소비량이 줄어드는 탓이다. 쌀로는 돈 만지기가 어려워진 농민들이 벼농사를 포기하고 있다는 말이다. 올 들어 전국의 벼 재배 면적은 98만㏊로 광복 이후 처음으로 100만㏊ 이하로 떨어졌다. 정부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74년 이후 최대 규모였던 1987년의 126만2천㏊에 비해 18년 만에 무려 22.3%나 감소했다. 웰빙바람으로 밥을 다이어트의 적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 탓에 앞으로도 쌀 소비는 크게 늘 것 같지 않다. '논'이 사라져 간다는 사실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경 하나, 정겨운 추억 한 가지를 잃어간다는 것이 된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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