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미신이라는 허울 아래 인멸돼 버릴 뻔했던 일제의 풍수침략 사실이 역사에 명확하게 밝혀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10년 전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일제 쇠말뚝 뽑기와 고유지명 찾기사업이 한 전직 공무원의 노력 끝에 한 권의 책으로 정리됐다.
화제의 주인공은 김규탁(59) 경북문화재연구원 사무처장. 1995년 당시 경북도 문화재 계장으로 근무하면서 일제 잔재 청산운동의 하나로 이들 사업을 입안, 추진했던 사람이다. 그가 이번에 사비를 들여 펴낸 책자는 '광복 50주년 기념 지명 유래 조사 및 쇠말뚝 찾기사업 결과 보고서'. 올해가 광복 60주년이니까 보고서가 나오는데 10년이나 걸린 셈.
"그 해 사업을 마무리하고 교열까지 다 받아 놓았지만 출간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2000년 공무원 특별교육 때 '쇠말뚝 찾기사업을 한 정권은 미신 정권'이라는 강사의 혹평을 듣고 원인 제공자가 해명도 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책 발간을 결심했습니다."
보고서에서 그는 일제가 개악했다고 주민이 제보한 지명 12개 시·군 26건과 쇠말뚝 등 지혈맥 훼손 사례 77건에 대한 현장 답사 결과를 전문가의 풍수적 평가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 김씨는 "일제에 의한 풍수침략이 가장 극심했던 곳이 대구와 경북"이라며 "일제의 쇠말뚝 박기 사업은 동해안과 백두대간의 기를 끊어 조선을 쉽게 침략하겠다는 의도였다"고 지적했다.
"1995년 1월 28일 사업계획이 매일신문 1면 머릿기사로 보도되자 전국에서 난리가 났어요. 생업을 내팽개치고 현장 안내에 나선 주민들을 보며 일제의 잔학상에 대한 국민들의 응어리가 얼마나 컸던 지를 짐작할 수 있었죠."
하지만 아쉬움도 많다고 회고했다. 산 이름 등 자연지명에 대한 제보가 적었고 공무원들의 적극성 부족으로 제보 내용의 사실 여부 확인 수준에 그쳤다는 것. 아울러 일제시대 이전 동리의 명칭, 혈맥 훼손에 관한 문헌자료가 부족해 조사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그는 이제라도 지명에 대한 종합적 체계적 조사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복 60주년이 됐지만 우리의 무관심 속에 일제 잔재는 아직도 청산되지 않고 있습니다. 땅 속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쇠말뚝을 뽑는 것도 계속 해야하겠지만 우리 마음 속의 '쇠말뚝'을 지우는 작업이 더 시급합니다." 이상헌기자 davai@imaeil.com
사진 : 광복 60주년 사업으로 일제의 쇠말뚝 박기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는 독립기념관 관계자들이 최근 대구시 남구 봉덕동 용두산을 찾아 쇠말뚝이 박혀 있던 위치를 확인하는 모습. 박노익기자 noi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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