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을 하다보면 기차 타는 게 무척 익숙해진다. 독일에서만도 몇 번이나 기차를 탔는지 모르겠다. 초고속 기차인 ICE, IC, 그리고 로컬 기차까지. ICE나 IC는 빠른 속도와 안락한 시설로 무장해 편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로컬 기차가 훨씬 마음에 든다. 역무원조차 없는 조그만 역까지 다 서는 로컬 기차를 타면 역마다 갖가지 사람들을 보는 잔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창밖으로 드넓은 평원에서 동물들이 유유히 풀을 뜯는 모습도 좋은 볼거리다. 마침 하멜른으로 가는 기차도 로컬 기차라 그런 정취들을 맘껏 느꼈다.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는 일. 하지만 하멜른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지도를 받아야 하는데. 주위 사람들은 "Excuse me"라는 소리만 듣고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영어를 못한다는 뜻이다. 어쩔 수 없이 가이드북에서 나온 간략한 지도에만 의지해서 길을 나섰지만 아무리 가도 광장이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았지만 역시나 "Excuse me" 소리만 듣고 도망가 버린다.
제대로 된 지도도 없고 목적지는 나타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물어보는 사람마다 다 그냥 가버리고…. 한동안 골목만 헤맬 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1층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할아버지가 혼자 헤매고 다니는 동양 여자아이가 안돼보였는지 정원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계속 독일어로 뭐라고 하는데 대충 어디로 가냐고 묻는 것 같았다. 영어로 열심히 설명했으나 알아듣지 못해 최후의 수단으로 가지고 있던 가이드북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할아버지는 가이드북의 깨알 같은 글씨를 제대로 보기 위해 다시 방 안에 들어가 안경까지 가져오더니 손짓, 발짓을 다 동원해 설명해주는 것이 아닌가. 할아버지의 세세한 설명 덕분에 목적지를 쉽게 찾았다.
마르크트 광장에는 전날 있었던 야외극의 무대가 그대로 남아 있고 상점마다 쥐 모양의 캐릭터 상품이 가득하다. 그 유명한 쥐 모양의 빵도 구경했다. 가만히 보니 바닥에 쥐 모양의 안내표가 있었다. 그 모양을 쫓아가 보니 박물관으로 사용된 라이스트 하우스와 쥐 모양 요리로 유명한 라텐펭어 레스토랑이 나온다. 이곳저곳 쥐 모양의 조각과 피리 부는 사나이 동상도 흩어져 있다. 유럽의 박물관은 대부분 월요일에 문을 닫기 때문에 라이스트 하우스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라텐펭어 하우스 바로 앞에 있는 서점에는 각국의 '피리 부는 사나이' 동화책을 전시해 놓았다. 일본어로 된 책도 눈에 띈다. 하지만 우리나라 책은 없다. 괜스레 기분이 나빠진다.
동화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진 곳이라는 뷰겔로자인 거리도 관광객들로 떠들썩하다. 노부부로 보이는 사람이 나란히 설명문을 읽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동화 마을이라고 해서 아이들만 찾으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조용하고 예쁜 마을을 찾은 그들의 모습이 참 평온해 보였다.
하나우에서부터 브레멘까지 이어지는 동화 여행. 도시마다 모두 박물관이나 동화의 흔적이 남아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현지인들과의 사소한 인연이 더 기억에 남는다. 여행은 만남이다. 정말 대수롭지 않은 만남일지라도 모두 다 소중하게 기억될 것 같다. 새로운 나라에서 또 어떤 새로운 인연이 기다릴지 기대부터 앞선다. 또 다른 만남,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정영애(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3학년)
*후원:고나우여행사(www.gonow.co.kr, 053-428-8000)
사진: 1. 하멜른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쥐 모양의 장식을 쉽게 볼 수 있다. 2. 멜른의 골목골목마다 집들과 거리의 조경이 무척 잘 되어있다. 3. 하멜른 역에서 내리자마자 반기는 쥐 모양의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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