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이학수씨 소환…테이프 내용 감 잡았나

입력 2005-08-10 10:53:13

불법도청 '후폭풍'

검찰이 옛 안기부 특수도청조직 '미림' 팀장 공운영(58)씨 집에서 압수한 도청테이프 274개에 담긴 녹음 내용에 대한 수사는 어디까지 진행됐을까.

검찰이 8일 미림팀원 2명을 조사한 데 이어 9일에는 삼성그룹 이학수 부회장을 참고인 겸 피고발인 자격으로 소환하면서 테이프 내용 수사가 어느 정도 진행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이 미림팀원에게 과거 어떤 내용을 도청했는지 추궁했을 가능성이 클 뿐 아니라 시민단체의 고발장만 갖고 '재계 1위 기업 2인자'인 이 부회장을 '피고발인 자격으로' 조사한다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테이프 내용 수사에 대한 검찰의 설명은 "수사 내용에 대해서는 보안상 아무 것도 알려줄 수 없다"는 원칙론적 발언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숨바꼭질 같은 브리핑 문답으로도 수사진행 상황을 가늠할 수는 있다. 서울중앙지검 황교안 2차장검사는 이학수 부회장 조사와 관련해 주말인 6일 "참여연대 고발장만 갖고 조사하지는 않는다. 고발이 들어오면 수사기관도 수사기관 나름의 책무가 있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고발장이 MBC 등 언론의 테이프 내용 보도를 기초로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검찰이 이 부회장 조사를 위한 사전준비로 적어도 MBC가 보도했던 '안기부 X파일' 내용 검토는 마쳤음을 짐작게 한다.

황 차장검사는 8일에도 "도청 수사가 먼저고 (테이프) 274개 수사는 나중인가" 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수사 선후는 말씀드릴 수 없다. 하다보면 순서가 바뀔 수도 있고 이야기를 잘못하면 '오락가락'했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며 말을 아꼈다.

황 차장의 이 같은 '숨바꼭질 어법'은 지난달 27일 공씨 집에서 테이프 274개를 압수한 뒤 29일 가졌던 브리핑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테이프를 확보해서 분석 중인가"라는 질문에는 "우리가 갖고 있나?"라고 웃으며 반문했고 "공씨가 갖고 있던 것은 찾았나"라는 질문에는 "우리도 (테이프가) 나왔으면 좋겠다"며 먼저 '말빗장'을 걸었다.

결과는 기자들의 완패. 검찰이 이미 공씨에게서 테이프를 압수해 갖고 있던 사실을 아무도 미리 예상치 못했다.

황 차장은 "불법 자료에 접근하는 방식은 적법해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정의고 방법은 최선이다"는 말로 보안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검찰의 입장을 대변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수사팀을 확대개편한 중에도 최소한의 인원만 테이프 내용 수사에 투입해 비밀리에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수사 진척이 더딜 뿐 아니라 김대중 정부 시절의 도청으로까지 수사가 확대돼 수사 호흡이 길어진 마당에 테이프 내용 수사에 속도를 낼 내부적 이유도 적어 보인다.

하지만 외부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검찰이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고 도청에만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삼성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검찰이라는 말을 하지 말라. 검사는 누구든 거악( 巨惡)을 찾아내면 기뻐하는 사람들이다"고 했던 황 차장의 말이 테이프 내용 수사에서 어떻게 현실화될지 주목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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