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광장-사람에게는 다 때가 있다

입력 2005-08-08 11:54:56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늙어지면 못 노나니'로 시작하는 노랫가락이 있다. 인생은 일장춘몽이니 '가세가세 산천경계로/늙기나 전에 구경가세'라며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지화자 좋구나 차차차'라는 후렴구를 넣어 절로 흥이 나게 만드는 노래이기도 하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이 노래는 '강강술래'에서 기원하고 있는 듯하다. '…강강술래 잘도 한다 인생일장은 춘몽이더라 강강술래/아니야 놀고 무엇을 할꼬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강강술래/늙고 병들면 못 노니라 놀고 놀자 놀아 보세 강강술래…'

노래란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니 이 노래들을 통해 조선시대와 해방 이후 민중들의 고단한 삶과 애환을 절로 느낄 수 있다. 문제는 이 노랫말처럼 장래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젊어서 노세'족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정은 이웃나라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최근 한 보도에 의하면 "약 52만 명의 일본 젊은이들이 아예 직업을 구할 생각도 없고 학교에도 다니지 않고 직업교육도 받지 않는 소위 '니트(NEET)족'들로 일본 사회의 새로운 흐름으로 부상했다"고 한다. 그들은 직업을 구하고 힘든 직장 생활을 하는 데 대해 많은 어려움과 우려를 하고 있으며, 부모들의 경제적 지원에 의해 이처럼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일본의 '니트족'과 상황은 다르다하나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여전히 우려할만한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초중고등학교에서 너무 제한되고 억눌린 생활을 했기 때문일까? 상당수의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방만한 생활에 빠지고 만다. 연이은 술자리와 미팅, 그리고 축제로 인해 대학생들이 응당 견지해야 할 인생과 학문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노력은 뒷전으로 밀려나 버리곤 한다. 대학가에서 서점이 설 자리가 없고, 그 대신 각종 술집과 오락을 위한 상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더욱 문제인 것은 이러한 현상이 어느 특정 대학만이 아니라 대부분 대학가의 보편적인 풍경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학생들만 탓할 일도 아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염세적 인식으로부터 청장년층들은 자유로운가? 자녀가 어느 정도 장성하였고 경제적인 문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때문일까? 동창회, 동기회, 산악회, 계모임뿐만 아니라 각종 회식 등으로 많은 시간을 친목도모로 소비해버리고 만다. 게다가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고 할지라도 봄, 가을 행락철이 되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관광버스들, 그리고 술과 노래… 어릴 때부터 그런 부모들을 보고 자라온 우리 청소년들이 쉽게 '젊어서 노세' 분위기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주변에서 흔히 이런 말들을 듣곤 한다. "사람 인생이 백년, 천년 가는 줄 아나? 젊은 시절은 금방이데이. 늙어가지고는 놀고 싶어도 못노는기라." 하지만 이런 생각은 지극히 인생을 즉흥적이요 단말마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인생이 짧기 때문에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에게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인생의 매순간이 소중하지 않은 때가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일하고 공부할 수 있는 청춘의 시간임에랴. 인간이란 누구나 태어나 자라 늙고 죽기 마련이다. 노년에 이르면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고, 쉬고 싶지 않아도 여유가 많은 법이다. 게다가 한평생의 고단한 몸을 땅 속에 묻어야 하는 죽음에 이르면 매양 쉴 수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삶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여전히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가?

'少年易老 學難成(소년이로 학난성) 一寸光陰 不可輕(일촌광음 불가경) 未覺池塘 春草夢(미각지당 춘초몽) 階前梧葉 已秋聲(계전오엽 이추성)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 순간순간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 연못가의 봄풀이 채 꿈도 깨기 전에, 계단 앞 오동나무 잎이 가을을 알린다.'

다시금 주자(朱子)의 '권학문'(勸學文)에 나오는 시의 첫 구절을 음미하고, 진지하게 인생을 관조하며 이 뜨거운 여름을 보내자. 스승의 큰 가르침에 절로 숙연해지지 않는가?

채형복 영남대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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