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재발견-대구 동구에 이런곳이

입력 2005-08-06 13:12:02

팔공산 언저리 마을엔 푸근한 고향냄새가…

팔공산을 빼고 대구 동구를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워낙 널리 알려진 탓에 '도시 재발견'을 통해서 굳이 재론할 필요는 없을 성싶다. 그렇다고 해도 팔공산 언저리까지 피해갈 수는 없는 노릇. 동구에는 아직 개발의 손때가 덜 묻은 자연마을이 곳곳에 있다. 비록 세련된 관광지는 아닐지라도 자연에 묻혀 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푸근한 곳으로 떠나보자.

대구공항 옆 불로화훼단지를 따라 팔공산 쪽으로 가다 보면 불로동 마을 초입에 '도동 측백수림' 쪽으로 향하는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을 따라 10여 분간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대구∼포항 고속도로 도동IC(나들목) 공사현장이 나온다. 길도 좁고 공사 차량이 자주 들락거리는 곳이니만큼 특히 조심해서 차를 몰아야 한다. 이윽고 만나게 되는 곳이 바로 '도동 측백수림'.

대구 시티투어 코스에도 포함돼 있는 유명한 곳이다. 직접 와서 보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1962년 12월 지정된 천연기념물 제1호가 바로 이곳 측백수림. 맞은 편에 주차장 등 편의시설이 최근에 갖춰지기는 했지만 측백수림 아래로 흐르는 개울에는 쓰레기가 버려져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가던 길을 재촉해서 몇 분간 올라가다 보면 대구∼포항 고속도로 교각이 눈에 들어온다. 교각 하나 크기가 웬만한 건물 못지않을 만큼의 위용을 갖췄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산기슭이 깎여나가고 나무가 베어졌다는 뜻. 교각이 끝나는 지점쯤에 오른쪽으로 보면 '용암산성'을 알리는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가 어렵다. 입간판만 없다면 이곳에 산성이 있었는지 알기 힘들 정도다. 고속도로 교각이 산성을 내리밟아버린 형국이다. 아무튼 이곳 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인근에서 봉기한 의병 1천여 명이 쇠스랑과 낫을 들고 조총으로 무장한 왜병들과 맞서 싸운 곳이라고 한다.

용암산성을 뒤로한 채 길을 계속 가다 보면 오른쪽에 작지만 깊은 계곡이 있다. 여름이면 도시민들이 차를 몰고 나와 곳곳에 진을 치는 바람에 한바탕 몸살을 앓는 곳이다. 물이 그다지 많지도 계곡이 깊지도 않지만 도심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아울러 왁자지껄한 유명 계곡과는 달리 호젓한 멋이 있다는 이유로 애용되는 곳이다. 계곡을 옆에 끼고 달리다 보면 이대로 산으로 들어가 버리는게 아닐까 싶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이내 걱정스러움은 놀라움으로 변하게 된다. 계곡 끝에 이렇듯 너른 땅이 있을 줄이야.

산자락이 포근히 감싸안듯이 마을을 휘감아 도는 곳. 바로 평광동이다. 야단스런 세인들의 법석에서 한걸음 벗어나 야트막이 산 아래 자리 잡은 마을. 뭇사람의 발길을 막으려는 듯 초입에 우뚝 선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그저 지나칠 것이 아니라 길 옆에 차를 세우고 사연을 읽어봄직 하다. 예상대로 번듯한 이름까지 갖춘 나무였다. '효자 강순항 나무'.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했던 가은 강순항을 기려 1830년 순조 30년에 효자각을 세웠고, 많은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도록 심은 나무가 바로 이 왕버들나무라고 한다. 표지판에 효자 강순항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담겨있는 만큼 자녀들과 함께 꼭 읽어보길.

마을 길을 따라 안쪽으로 한참을 들어가면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13호인 첨백당이 있다. 역시 효자로 이름 높던 우효중의 효행을 알리고 조선말 기우는 국운을 안타까워하며 시골에 묻혀 살던 우명식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아울러 단양 우씨 후손 교육을 위해 1896년 고종 33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마을로 들어서도 첨백당까지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다. 마을 길을 헤집고 가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마을 가운데쯤 차를 세워놓고 걸어가면 좋을 듯. 하지만 아쉽게도 첨백당은 옛 모습을 많이 잃었다. 곳곳에 빗물이 새는 탓에 지붕에는 천막을 덧입혀 놓았고, 주변도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한 마을 노인은 "시 지정 문화재인 탓에 맘대로 수리를 할 수 없다"며 "수차례 수리를 건의했는데도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퇴락해 가는 첨백당의 멋스러움을 잠시나마 달랠 수 있는 것이 바로 건물 앞 소나무와 은행나무. 해방의 기쁨을 기념하기 위해 심었다는 소나무는 그 풍채가 남다르고, 양 옆에 호위병마냥 우뚝 선 은행나무 두 그루는 나이가 200년이 넘었다고 한다. 첨백당은 바로 세월의 오고감을 느낄 수 있는 바로 그런 곳이다.

평광동은 팔공산 자락과 함께 유일하게 대구에서 사과를 재배하는 곳이다. 마을 곳곳에 과수원이 흩어져 있다. 도로변에는 관광객 등쌀에 못이겨 철조망을 치기는 했지만 아직 마을 안쪽 과수원은 울타리 하나 없다. 한 과수원지기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놀러와서 한두 개 따가는 거야 인정상 욕을 못하지만 요즘엔 아예 나무를 통째로 훑어간다"며 "왜 자꾸 사람을 미워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지었다. 평광동은 아직 사람이 사람을 믿고 사는 곳이다. 하지만 도시민들의 욕심이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다. 요즘엔 멧돼지까지 극성이란다. 새끼 돼지들 먹이려고 사과나무를 가지째 부러뜨리는 바람에 주민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람이건 돼지건 욕심이 화근이다.

김수용 기자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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