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전국 초등학교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 건립이 붐을 이뤘다. 한글을 만들어 이 땅에 문화를 꽃 피게 한 세종대왕과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충무공을 통해 민족의 자긍심을 키우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북한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던 시절에는 반공을 상징하는 이승복 어린이의 동상이 전국 초등학교에 앞다퉈 세웠다. 동상을 통한 대국민 이념 전달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 통일 직후 동베를린 거리에서 군중에 의해 철거된 소련 공산 혁명의 상징 레닌의 동상을 복원할 움직임이 독일에서 일고 있다고 한다. 동'서 냉전의 유산이 함께 남아 있는 베를린을 20세기 세계사의 상징적 관광지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독일 관광업계가 동상 복원에 앞장서고 있다. 상처로 얼룩진 과거를 볼거리로 만들어 오늘의 삶에 이용하겠다는 상업 마인드 때문이다.
◇ 중국 산둥성 스다오(石島)시 적산(赤山) 아래 천 년 전 신라인들을 위해 장보고가 세웠다는 법화원 자리에는 얼마 전 장보고 기념관이 개관됐다. 높이 8m, 무게 6t짜리 거대한 장보고 동상도 함께 세워졌다. '한민족의 영웅, 해상 무역왕으로 영예로운 이름을 널리 떨쳤다'는 글귀도 새겨졌다. 산둥성 위해(威海) 지역은 청해진과 함께 당시 장보고의 해상 활동 주요 거점이었으며, 한'중 수교 이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진출해 있는 곳이다. 정작 우리는 외면하고 있는 장보고를 중국이 관광상품화했다.
◇ 인천 자유공원 내 맥아더 동상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철거와 사수 주장이 여전히 뜨겁다. 나라의 관문격인 인천 초입에 두는 게 맞느냐에서 시작, 6'25 전쟁과 미국을 어떻게 보느냐는 논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예비역 장성들까지 가세한 보수단체와 철거를 주장하는 세력 간의 물리적 충돌도 빚어져 경비 인력이 지킨다. 과거를 오늘에 활용하는 외국과 달리 우리는 여전히 과거를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 세계 곳곳에 세워져 있는 동상에는 그 나라의 역사와 함께 과거를 잊지 말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영광의 역사든, 오욕의 과거든, 그 교훈을 오늘에 되살려 나가자는 거다. 그래서 널리 알려진 동상은 그 자체로 역사 교과서가 된다. 맥아더 동상은 그 자체로 우리의 역사이며 관광자원이 아닐까.
서영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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