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국가정보원이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4년여 동안 불법도청을 해왔다고 발표하면서 현재 진행중인 안기부 X파일 수사는 새 국면을 맞게 됐다.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김대중 정부시절 도청 행위가 새롭게 드러남에 따라 이 부분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아울러 검찰은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을 다음주 피고발인 자격으로 조사키로 하는 등 사실상 도청 테이프 내용에 대한 수사에 착수함에 따라 사건의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사법처리 가능한 DJ정부 도청 수사 초읽기 = 검찰은 현재 진행중인 도청 테이프의 유출과정에 대한 수사에 이어 통신비밀보호법상의 공소시효(7년)가 완성돼 처벌할 수는 없다는 한계에도 불구, 안기부 비밀도청조직 미림팀이 활동한 김영삼 정부시절의 불법도청 실태에 대해 진상규명 차원에서 수사를 벌일 방침이었다.
그러나 이날 국정원이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아 시기적으로 사법처리가 가능한 1998~2002년 사이에 불법도청이 이뤄졌음을 시인함에 따라 국민의 정부 시절 국정원의 불법도청 행위에 대한 검찰의 전면 수사가 불가피하게 됐다.
검찰이 전날 천용택 전 국정원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것도 전 미림팀장 공운영(구속)씨로부터 회수한 테이프 처리과정과 관련한 의혹을 규명하기보다는 국정원장 재직시 이뤄진 도청행위에 대한 수사의 목적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4일 공씨 구속과 5일 이상호 MBC기자 소환조사를 기점으로 도청 테이프유출과 관련한 수사를 일단락짓는 분위기였던 만큼 곧바로 과거 불법도청행위 쪽으로 수사력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당초 다음주부터 공씨 자택에서 압수한 도청 테이프 274개가 제작된 김영삼 정부시절 도청실태에 대해 수사에 들어갈 계획이었지만 처벌가능한 불법행위가 국가기관을 통해 드러난 만큼 국민의 정부 시절의 도청행위에 대한 수사로 곧바로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특히 국정원이 '휴대폰-일반전화 간 도청은 가능하다'며 휴대폰 도청이 일부 이뤄졌음을 암시함에 따라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불거졌다가 검찰이 무혐의로 종결한 휴대폰 도청의혹에 대한 사실상의 재수사도 이뤄질 전망이다.
아울러 수사의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검찰이 국정원에 대해 전면 압수수색을 단행할 가능성도 더욱 높아졌다.
또 국민의 정부시절 도청이 이뤄진 2002년 3월 이전에 국정원장을 역임했던 이종찬(1998.3~99.5), 천용택(99.5~99.12), 임동원(99.12~2001.3), 신건(2001.3~2003. 4)씨 등에 대한 조사는 물론 도청내용을 보고받았을 국민의 정부 실세급 인사들에 대한 소환도 이뤄질 전망이다.
◇이학수 소환…'도청내용' 수사 신호탄인가 = 검찰이 오는 9일 이학수 삼성그룹부회장을 참여연대가 고발한 사건의 피고발인 자격으로 조사키로 한 것은 일단 표면적으로는 도청테이프 내용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음을 의미한다.
이씨 소환은 언론보도로 드러난 1997년 이씨와 홍석현 대사 간 대화 속에 담긴 삼성의 불법자금 제공 의혹에 대해 사실 관계를 확인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 소환과 관련, "고발이 됐으니까 부르는 것이다. 테이프 274 개의 내용에 대해 수사를 전면 확대한다는 의미로 해석하지 말아달라"고 말했지만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한계가 있다.
검찰이 고발사건을 처리할 때 고발인 조사를 거친 뒤 사건이 수사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피고발인 조사를 하지 않고 수사를 종결하는 경우가 많아 의미 없이 이씨를 조사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소환여부가 불투명했던 이씨를 불러 조사키로 한 사실 자체가 다른 도청테이프 내용 수사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엿보게 하는 부분이다.
검찰은 그간 불법도청 테이프의 내용을 근거로 수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왔다. 특히 7월27일 공운영씨 자택에서 도청테이프 274개가 발견되면서 고민의 깊이는 더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이씨 소환은 검찰이 현재 내용이 전혀 공개되지 않은 나머지 도청테이프에 대한 수사문제는 시간을 두고 검토하더라도 언론을 통해 공개된 내용을 근거로 시민단체가 고발한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현재 도청자료 유출 및 도청실태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의 성격과 수사인력 등을 감안할 때 아직 도청 내용에 대한 본격수사에나섰다고 단정키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수사팀에 특수부 검사 2명의 이름을 올려두긴 했지만 검찰이 1997년 당시 정관계 인사에 대한 삼성의 전방위 로비의혹을 본격 수사할 경우 사건을 분할해 특수부로 넘기는 것이 수순일 텐데 아직 재배당 등의 움직임이 없는 것도 전면수사를 예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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