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CEO탐구-(5)내 삶의 사표(師表)는

입력 2005-08-05 16:49:49

냉철한 이순신부터 정직한 농부까지 "닮고 싶어요"

학식·덕행이 높아 남의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을 사표(師表)라 한다. 인생은 물론 기업 경영에서도 사표를 갖는 게 여러 모로 유익하다. 사표는 인생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스스로를 자신의 사표에 투영시키며 닮으려는 과정에서 도약의 계기를 찾을 수도 있기 때문. 사표를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기도 한다.

대구경북 CEO들은 이순신 장군에서부터 박정희 대통령,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이름없는 농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을 사표로 꼽았다.

◆이순신 장군

최근 우리 사회에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이순신 장군.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지만 모든 것을 이룬 '불굴의 인간' 이순신 장군은 400년의 세월을 넘어 CEO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 군인이란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CEO 측면에서 장군을 새로이 조명, 그를 사표로 삼은 CEO들이 적지 않았다.

대구에 본사를 둔 전국 최대 공구 유통업체 책임테크툴 최영수 대표. "환경이나 조건을 탓하지 않고, 냉정한 판단으로 옳다고 생각한 일을 굽히지 않고 추진하면서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끝까지 간직한 이순신 장군의 면면 모두를 존경합니다." 살다 보면, 그리고 사업체를 꾸려가다 보면 힘든 일에 부딪히게 마련이라는 최 대표는 "조건이 힘들다고, 상황이 힘들다고, 그럴 때마다 포기한다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실패했더라도 나아가고, 또 나아가다 보면 성공 가까이에 가 있는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가르침을 몸소 보여준 장군을 항상 존경한다고 얘기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순신 장군 이야기가 나오면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에 빠져들었다는 그는 신혼여행을 현충사로 다녀왔고,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열혈 시청자이기도 하다.

이승일 엑슨밀라노 대표도 이순신 장군을 삶의 사표로 꼽았다. "어릴 적에는 엄청난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지지 않고 승리해 나라를 구한 측면에서 장군을 존경했지요. 성인이 된 이후엔 묵묵히 준비하고, 훈련하고, 지형지세를 파악하고, 거북선을 만들고 어려운 처지에서도 기록을 남기는 등 당시 사람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했다는 점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유통업체간 치열한 경쟁을 헤쳐나가며 CEO란 측면에서 장군을 존경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고 이 대표는 털어놨다.

◆박정희 대통령

구미에서 활동하는 장병조 삼성전자(주) 구미사업장 공장장(전무)과 이상철 KEC부사장(공장장)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인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나란히 꼽아 눈길을 끌었다. 구미에서 태어났고, 구미공단 설립에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한 박 전 대통령과 구미와의 각별한 '인연' 때문으로 풀이되는 대목.

장 공장장은 "박 대통령은 나라가 어려울 때 강한 집념과 애국심으로 조국 근대화란 과업을 완수했다"며 "공과 허물이 있지만 그 분 나름의 조국에 대한 국가관과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 나라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박 대통령의 투지와 목표에 대한 강한 집념을 배워야 할 덕목으로 꼽았다.

이상철 KEC 부사장도 강한 집념과 애국심으로 근대화란 과업을 이루어낸 측면에서 박 대통령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전자산업의 메카인 구미공단을 조성하면서 KEC의 창립자인 고 곽태석 회장님과 함께 구미공단 전자산업의 첫 삽을 뜬 분이기도 합니다. 다방면의 평가가 있지만 조국에 대한 헌신적인 노력으로 대한민국의 기초를 닦은 박 대통령의 업적은 물론 목표에 대한 강한 집념과 의지를 존경합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한삼화 삼원C1 대표는 기업활동을 하면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으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를 꼽았다. "제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 주신 분이 바로 정주영 회장님이지요. 그분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고, 우리나라 기간산업 발전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특히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조그마한 정보나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 더 크고 엄청난 업적을 만들어 냈고, 창조적인 인생을 산 것이 존경하는 이유라고 한 대표는 귀띔했다.

박무희 구봉정보기술 대표도 정 회장을 "열심히 노력하고 끊임없이 생각한 바를 실천하면서 자신의 목표를 성취한 분"이라며 사표로 소개했다. CEO가 갖춰야 할 지극히 기본적이면서도 어려운 덕목이 결단력·포용력이라고 정의한 박 대표는 이 같은 덕목을 갖추고 어려운 시절을 헤쳐나간 정 회장의 삶을 존경한다고 했다. "정 회장님과 같은 선구자들의 모습에서 롤 모델(Role Model)을 찾으며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덕분에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꼼꼼하게 체크하고 분석하는 습관이 생겼고, 쉽게 지나치던 일도 한 번 더 되돌아보는 자세를 갖게 됐지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

(주)포스콘 신수철 대표는 삶의 사표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을 꼽았다. "투철한 사명감과 목표의식을 갖고 항상 최고수준을 지향하는 점을 매우 존경합니다. 또 부하에 대한 깊은 성찰과 애정, 미래에 대한 깊은 통찰력도 회장님으로부터 제가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이화언 대구은행장은 초대 대구은행장을 지낸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을 존경한다고 했다. "양말 기계 두 대로 시작해 대구은행장, 한국은행 총재 등을 지낸 금융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부총리 등을 역임한 데 이어 이수그룹을 중견기업으로 일궈낸 입지전적 기업인이기도 하지요. 그 분은 또한 어떤 조직의 CEO가 되면 언제나 조직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경영 마인드로 김 명예회장은 몸담은 조직을 언제나 초일류로 만들 정도로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이 행장은 밝혔다.

◆"나의 사표는 농부들의 삶."

구정모 대구백화점 대표는 부친인 구본흥 명예회장과 미국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를 사표라고 밝혔다. "회장님은 항상 현장에 계셨고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주변이 어지러워도 따라 흔들리지 않고 근본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셨기에 지금의 대백이 있다고 봅니다." 피터 드러커로부터는 학문의 다양한 분야를 흡수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 끝없는 자기 변화, 현장을 발로 뛰면서 몸으로 배우는 점을 배우고 싶은 덕목이라고 꼽았다.

대아산업 등 4개 계열사를 경영하며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박병웅 대아산업 대표는 어머니를 사표로 꼽았다.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홀로 8남매를 기르며 세상의 모든 고통과 싸우셨어요. 어려운 고비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겨냈습니다."

경북경영자총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영석 대영산업 대표는 '농부들의 삶'이 사표라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씨앗을 뿌리고 그것들이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은 근면한 삶, 성실한 삶을 살지 않으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땅은 속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 어떠한 사술(詐術)도 통하지 않는 정직한 삶을 사는 게 바로 농부들입니다." 그래서 농부의 삶으로 지금껏 기업을 경영하고, 직원들에게도 근면하고 성실하며 정직한 삶을 항상 강조한다는 게 김 대표 얘기다.

현한근 문경여객자동차 대표는 얼마 전 작고한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 선생을 존경한다고 했다. "대쪽같은 절개로, 그러면서도 맑고 인자함을 잃지 않으신 선생님은 인간이 이 세상을 사는 법을 실천으로 보여줬습니다. 마음이 복잡하고 욕심이 생길 때 선생님의 시조 '백자부'를 읽고나면 마음이 안정되곤 합니다."

이원걸 (주)애니넷 대표가 사표로 꼽은 인물은 이채롭게도 흥선대원군 이하응. "그 분의 삶에 대한 의지와 열정에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자식을 임금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치밀한 계획으로 목표를 달성하고, 개혁정치를 실현한 흥선대원군의 의지와 인내심 그리고 카리스마를 존경하고 닮고자 합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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