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질투는 나의 힘

입력 2005-08-04 16:35:54

파괴적 마음이 인간행동의 동력

질투는 나의 힘! 질투심이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좌우하는 힘이라는 뜻인가. 질투라는 감정의 속성은 무엇일까. 그 외에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27세의 대학원생 이원상은 잡지사에서 일하며 학비를 조달하는 고학생이다. 잡지사의 편집장은 중년에 남은 목표는 여자뿐이라고 떠들어대는 바람둥이다. 입사 초기부터 이원상은 편집장과 갈등 관계에 놓인다.

어느날, 여자 친구에게서 유부남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고백을 들은 이원상은 그녀에게서 매몰차게 돌아선다. 자기를 버린 여자에 대한 미움 때문일까. 이원상은 잡지사를 떠나지 않고, 오히려 편집장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애인을 뺏어간 편집장에 대한 분노감 때문일까. 직장 상사의 파멸을 냉담하게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일까.

자기 혼란으로 허우적거리던 이원상은 동료 기자인 연상의 여인 박성연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회식날 밤, 편집장과 호텔로 향한다. 여기자와 편집장이 가까워지면서 다시 삼각관계에 놓인다. 이원상-여기자-편집장. 우연일까. 애인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뺏어간 남자와 한판 싸움이라도 벌일 만한데, 이원상은 움직일 조짐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원상은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이런 구도를 만들어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같은 문제를 되풀이하는 것을 반복적 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라고 한다. 억압된 본능적 충동에서 오는 반복적 강박은 유아기 시절 경험에서부터 초래되기 때문에 쉽게 포기되지도 않는다.

편집장에 비해 너무나 약한 위치에 있는 이원상은 여기자 박성연에게 말한다. "나도 잘 해요. 이미 편집장님과 잤다면 더는 자지 마요"라고 애원한다. 편집장은 이원상에게 "자기 안목을 가져라. 자리를 보는 힘이 필요하다"라며 이원상의 자아발달을 돕는 조언을 해주는 아버지 같은 역할도 한다. 아버지 같은 편집장과 어머니격인 5세 연상인 여자와의 삼각관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재현이다. 기득권을 가진 강한 편집장에게 대들지도 떠나지도 못하는 이원상은 거세 불안을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간 사람에 대한 질투심과 자신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편집장에 대한 부러움의 감정인 선망을 동시에 가졌을 이원상.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원상과 편집장이 나란히 누워 대화하는 모습이다. 이원상은 모든 불안을 동일시를 통해 해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원상이 세들어 사는 집의 주인인 안혜옥이라는 여자가 있다. 이원상에게 애정을 느끼며 집착하는 안혜옥은 사랑받고 싶어 하는 리비도 본능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원상은 동정만으로는 결혼할 수 없다는 편집장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녀를 떠난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움직이는 에너지의 근원은 인간 내부의 본능적 욕구에서 비롯되며, 성 본능인 리비도와 파괴적 본능이 있다고 하였다.

편집장이 이원상에게 "작가란 근본적으로 원한이 있어야 글을 쓴다. 후벼 파헤쳐진 상처가 있어야 글을 써서 먹고 산다"라는 말에서, 파괴적인 마음이 인간 행동의 동력으로 작용함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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